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시, 하느님께 광주를 봉헌 하려는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9.13 11:18
  • 수정 2021.09.14 09:40
  • 호수 1601
  • 댓글 1

하느님의 최고 은총·은혜가 순교
‘광주 순례길’ 영적 공간으로 변모
가톨릭 성지에서 불자도 마음 정화?
종교갈등 폭발시킬 ‘종교편향’ 정책

조선시대 의승군이 머물렀던 사찰로 호국불교의 성지인 남한산성 장경사. 사진 출처=장경사.
조선시대 의승군이 머물렀던 사찰로 호국불교의 성지인 남한산성 장경사. 사진 출처=장경사.

경기도 광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가톨릭 성지 순례길’ 조성에 신동헌 광주시장이 앞장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톨릭계에서 이 사업을 간청해도 ‘불가’ 입장을 견지해야 할 시장이 직접 챙겨가며 강행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충격이다. 이것은 ‘졸속행정’이 아니라 명백한 종교편향 행정이다. 그것도 종교중립을 철저하게 지켜야 할 지자체장이 주도한 종교편향 정책이다. 

광주시는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성지 순례길’을 홍보하며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가톨릭 성지라고 못 박았다. 광주시가 이에 대한 학술적 검토를 얼마나 면밀하고도 깊게 진행했는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지만 기존의 가톨릭계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차후라도 광주시는 조선의 정예군과 의병, 승군의 붉은 넋이 서린 남한산성을 왜 ‘가톨릭 순교지’로만 한정했는지 그 이유와 그에 따른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역사문화를 왜곡축소 했다는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2021년 7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 시장은 “(광주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천년고도의 남한산성을 비롯한 조선백자의 고장”이라며 “우리 시는 남한산성∼천진암 역사문화 관광밸트를 비롯한 길 조성 프로젝트를 신성장 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때까지도 남한산성을 두고 ‘가톨릭 성지’라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광주시는 8월26일 남한산성을 가톨릭 순교지라 지칭하며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광주 성지 순례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신 시장은 2020년 12월부터 천진암을 시작으로 광주시 관내 10여개 성당과 천주교 수원교구를 방문하며 순례길 조성 약속과 함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신 시장이 언급한 ‘길 조성 프로젝트’는 ‘광주 순례길’로 명명됐다. 대외적으로는 ‘역사문화길’이라 홍보하고 실상은 ‘가톨릭 성지 순례길’을 추진한 것이다.  

‘가톨릭 성지 순례길’이 얼마나 위중한 사안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전한 바 있다. ‘순례지는 회개에 필요한 힘을 되찾는 안식처가 될 수 있고 참다운 복음화의 장소라는 특징을 갖는다.’ 광주시가 추진하는 성지 순례길은 이를 넘어선다. 종교적 신앙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순교(殉敎)’를 포함한 성지순례길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교회헌장’에 나타난 순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최상의 은혜’이며 ‘소수의 특정인들에게 허락된 은총’이다. 가톨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열 번째 회칙 ‘진리의 광채’에서 “순교는 교회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표시”라며 “죽음으로써 증언한 하느님의 거룩한 법에 대한 충실성은 피를 흘리기까지 한 장엄한 선포요 선교적 투신”이라고 했다. ‘교황의 회칙’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 전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요한 바오르 2세가 정의한 신앙적 순교 정신은 한국 가톨릭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자명하다. 

궁극적으로 가톨릭에서의 순교는 ‘천국에 이르는 길이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순교지 순례’는 순교자들이 생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어느 정도의 신앙심을 가졌기에 죽음도 불사했는지를 확인하려는 강력한 신앙의지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가톨릭 성지라 확정하고 이은 그 길, 그 공간은 가톨릭 순례자의 영적 공간인 것이다. 

광주시에 다시 묻는다. 가톨릭 신자들의 안식처를 왜 광주시가 앞장서 마련해 주려는가? ‘시민의 땅’을 왜 광주시가 앞장서 가톨릭만의 영적 공간으로 변모시키려 하는가? 정말 ‘광주를 하느님께 봉헌’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광주시가 내놓은 홍보자료를 유심히 보라. 1코스 성지순례길의 부제는 ‘종교화합, 마음의 정화’이다. 종교화합은커녕 종교갈등을 불러일으킬 가톨릭 성지를 조성하면서 이웃종교인들에게 마음을 정화해 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제안인가 말이다. 광주시가 열어야 할 길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시민의 정신건강을 증대시키고 역사문화 고취를 위한 ‘상생의 길’이다.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