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소문 역사공원 내 전시된 초대형 나전칠화에 ‘화엄일승법계도’를 그려 넣고도 “강강술래 하는 하늘나라 잔치”라고 궤변을 늘어놓던 최 모 신부가 동성 신학생을 성추행해 면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주 옹청박물관장이기도 한 그는 인천가톨릭대 초대총장으로 재직하던 1996~1998년 다수의 남성 신학생들을 성추행했지만 22년 동안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사제직을 유지하다가 이를 집중적으로 다룬 시사 프로그램 방영 일주일 전에야 원로사목자에서 면직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5월1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1214회)에서는 최 신부가 총장으로 있을 당시 신부가 당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키스하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전직 수녀와 신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PD가 최 신부를 찾아가 최 신부에게 묻자, 그는 “그(학생)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어떻게 보면 사랑을 하는데 껴안아 주고 그런 거는 했지만 그 이상의 그거는…”라고 말을 흐리며 “거기에 쉽게 말하면 볼을 맞추고 이랬는데 그게 (상대방은) 키스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나는 사랑의 표현으로 내가 정말 아들 같고 이렇게 해서 그랬는데”라고 횡설수설했다. 이수정 프로파일러는 그를 향해 “전형적인 근친 아동 성범죄자의 변명”이라고 분석·판정했다.
최 신부는 “자신의 애정 표현을 싫어한 학생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것이 “전생에 저지른 일”이니까 지금과는 관련 없다는 투로도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군대 이상으로 위계가 엄격하다는 가톨릭 신학교 내에서 최고 권력자인 총장이 무력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사건이다. 신학생들은 7년간 가톨릭대 기숙사에 머물며 교육받고, 일단 한 교구가 소속되면 대부분 평생 교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주교나 총장 등 상급자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최 신부의 잇따른 성추행에도 신학생들이 이를 문제 삼지 못했고 이런 사실은 인천가톨릭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외국인 신부가 신학생들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 교구 내에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교구는 1998년 5월 최 신부를 총장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지만 최 신부는 사건 이후로도 22년 간 사제직을 유지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999년 11월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 심포지엄에서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2005년 7월 경기도 용인 중증장애아동 생활시설 ‘지도 신부’로, 2012년 11월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심포지엄에서 ‘한양대 석좌교수’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런 그는 법계도를 왜곡한 나전칠화를 통해 명예 회복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을 기념해 서울대교구 ‘기념 작품 제작 추진위원회’에서 업무를 총괄하며 문제의 이 칠화를 만든다. 결국 바티칸 특별전 전시를 추진했고 교황청 기증에도 성공했다.
평화방송(2019년 9월24일자)에 따르면 최 신부는 법계도 칠화에 대해 “과거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회의 아주 자랑스러운 특성,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 그다음에 종교전쟁인 유교와 기독교의 투쟁과 박해를 형상화했다. 현재 부분에서는 광화문에서의 124위 시복과 순교자들을 본받는 성체의 삶 또 미래에 대해서는 성모님의 대관식 또 우리도 지상에서 천상으로 구원을 받으려면 특별히 묵주의 기도와 예수님의 생애, 묵상, 본받음. 그다음에 마지막으로는 인류와 우주 만물이 함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하늘나라 잔치를 형상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림 속 문양이 법계도가 아니라 “강강술래 하는 하늘나라 잔치”라고 거듭 궤변을 늘어 놓은 것이다.
칠화 제작도 최 신부가 관장으로 있는 여주 산북면 옹기동산 청학박물관장(옹청박물관)에서 조성됐다. 그는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주어사 터를 이용해 자신이 2002년 설립한 박물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주 산북성역화추진위원회’를 만든 그는 위원장을 맡으며 2016년부터 주어사·천진암 순례를 이어왔고, 박물관 내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별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운영, 관리하던 박물관 인근 예수동자수도회도 매주 1회 주어사 터를 순례하고 있었다. 예수동자수도회는 지적장애인 4명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이를 시설로 등록하지 않았다. '장애인법'에 따르면 지적 장애인이 1명이라도 거주하면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 이에 방송 측은 최 신부에게 ‘인권 침해’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닌 가톨릭 수도회라고 거듭 강조해 의구심을 낳았다.
주어사·천진암과 엮어 여주 옹청박물관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던 시도는 22년 만에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멈춰진 상태다. 인천교구는 최 신부의 성추행을 다룬 방송을 3일 앞둔 2020년 5월13일 급히 기자회견을 갖고 “제재와 징계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해 면직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구 홈페이지를 비롯, 곳곳에 남겨진 최 신부 ‘흔적 지우기’에 나선 양상이지만 그가 일찌감치 징계받았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법계도 왜곡 칠화는 별다른 조치 없이 서소문 역사박물관에서 여전히 전시되고 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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