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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계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가 종교화합 시작”

  • 교계
  • 입력 2022.12.23 13:55
  • 수정 2022.12.27 18:00
  • 호수 1663
  • 댓글 14

오봉 스님, ‘법계도 왜곡’ 사과요구하며
11월11일부터 명동성당 앞서 43일째
혹독한 추위에도 11시간…삼보일배도
“불자들 향해 사과할 때까지 정진할 것”
“가톨릭 불편한 상황 모면 않도록 발원”

12월22일, 서울 명동성당에도 맹렬한 추위가 찾아왔다. 최저 기온은 영하 14도, 한낮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떨어진 날이었다. 살갗을 에는 혹독한 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오봉 스님은 한 달 반 가까이 매일 11시간 정진 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화엄일승법계도에 십자가를 매달고 “하늘나라 잔치”라고 왜곡한 가톨릭계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위해서다.

스님은 오전 8시 명동성당에 도착해 오후 7시까지 정진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자릴 지킨다. 칼바람이 불자 얇은 비닐 천막이 거칠게 흔들렸지만 스님은 “괜찮다. 가부좌 트는 건 내 주특기”라며 빙긋이 웃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스님을 향한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 보이던 한 청년은 스님의 소지품 등을 한 구석으로 치워버린 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하며 호통을 쳤다. 이어 경찰을 불렀다. 스님을 “잡아가라”고 소리쳤다. 출동한 경찰들이 ‘1인 시위’는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며 청년을 어르고 달랬다. 그제야 긴박했던 상황이 마무리됐다. 한 중년 남성은 “이제는 예수를 믿어야 할 때”라며 스님을 설득했고, 어떤 중년 여성은 무릎을 꿇으며 “스님, 제발 철거해달라”며 호소했다. 이외에도 삼보일배하며 목탁을 쳤다는 이유로 하루에 경찰차가 세 번이나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님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서소문역사박물관이 법계도를 철거했습니다.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를 시작한 지 꼭 3일 만이었어요. 왜 철거했겠습니까.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서 그런겁니다. 아무 잘못도 없다면 슬그머니 내릴 이유가 없었겠죠. 저는 법계도를 ‘하늘나라 잔치’라고 왜곡한 것에 반드시 사과를 받을 겁니다. 우리 불자들을 향해 ‘미안하다’ 말할 때까지 죽기 살기로 할 겁니다.”

스님이 만든 간이 비닐 천막엔 붉은 매직으로 ‘명’ ‘동’ ‘선’ ‘원’이 쓰여 있었다. 이에 관해 묻자 스님은 “11월18일날 썼다”면서 “이른바 ‘명동성당 문전박대 사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 불교왜곡 대응 특별위원회’ 스님들이 서소문역사박물관과 명동성당을 찾은 날이다. 하지만 서소문역사박물관 측은 변호사를 대동해 법적 책임이 없다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고 천주교서울대교구는 만남 자체를 회피했다. 이에 대표단 스님들은 기껏 찾은 명동성당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시위한 지 일주일 됐을 때 대표단 스님들이 신부님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지 않고 문전박대하는 모습을 보고 제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럽더군요. ‘몰랐다. 미안하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면 철수할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신부님들 모습에 실망했어요. 이들에게 참회 사상을 알려줘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명동선원’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봉 스님은 ‘명동성당 문전박대 사건’ 다음날부터 오전 9시, 오후 12시, 6시 ‘의상조사법성게’를 외며 삼보일배하기 시작했다. 7자로 이뤄진 1구절당 한 배를 한다. 한 번에 120배씩, 매일 360배이다.

스님은 “절을 하다 보니 ‘한 점 크기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네’(一微塵中含十方)라는 법성게 구절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면서 “하나의 미세한 티끌에 삼악도와 천인아수라가 있고 무량수 모든 부처님이 있다. 작은 티끌 하나에 인과업보가 다 담겼다는 의미다. 신부님들이 불편한 상황을 단순히 ‘모면’하지 않고 ‘화합’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저만의 방식으로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불자들이 가끔 찾아와 핫팩을 주고 간다”면서 “하지만 걱정마시라. 지난겨울은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동안거를 났다. 여의도는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더 추웠다. 명동성당은 지난 안거보다 안 춥다. 이 정도면 동안거 날 만하다”며 씽긋 미소를 지었다.

 

 

오봉 스님 유튜브. 108총림(https://www.youtube.com/@user-fm9yo4fz2d/featured) 캡처.
오봉 스님 유튜브. 108총림(https://www.youtube.com/@user-fm9yo4fz2d/featured) 캡처.
오봉 스님 유튜브. 108총림(https://www.youtube.com/@user-fm9yo4fz2d/featured) 캡처.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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