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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빈자 사면 추진 소식에도 노승의 눈과 귀는 무심했다

  • 교계
  • 입력 2025.03.14 13:20
  • 수정 2025.03.14 14:11
  • 호수 1769
  • 댓글 1

원두 스님 “사면 표결 분열로 이어질까 우려”
93세 종원 스님, 출타·통화 어려워 암자 칩거
진경 스님 “이제 남은 일은 기도·수행일 뿐”

조계종에서는 수차례 멸빈자 사면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중앙종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4년 4월 10일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법회에서 당시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반대편에 서있다 멸빈된 9명의 징계자들에 대해 사면복권”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조계종에서는 수차례 멸빈자 사면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중앙종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4년 4월 10일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법회에서 당시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반대편에 서있다 멸빈된 9명의 징계자들에 대해 사면복권”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법보DB]

30여 년, 계절은 한 번도 어김없이 봄을 불러왔지만, 멸빈의 징계를 받은 스님들의 시간엔 늘 시린 바람이 감돌았다. 1994년 종단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멸빈’의 중징계를 받은 이들에 대한 기억은 산천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그 사이 조계종에서는 수차례 멸빈자 사면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중앙종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무심한 듯 흐른 시간이 30여 년, 이제 남은 ‘멸빈’ 징계자들의 세수는 90세를 넘나든다. 멸빈자 사면 특별법과 관련 종헌개정안이 다뤄질 전망인 조계종 중앙종회 233회 임시회의는 종단이 사면을 통해 대화합을 이룰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같은 소식을 접하는 당사자들의 소회는 그저 무심해 보인다.

1994년 당시 원로회의 사무처장과 종정사서실장을 겸직했던 원두 스님은 최근 두 번의 심장 수술과 교통사고 소식을 전했다. 1994년 개혁회의를 비판하는 석명서(釋明書)를 발표한 이유로 멸빈된 원두 스님은 최근의 사면 움직임에 대해 “승가는 화합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피력했다. “중앙종회 표결에서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한 표의 반대라도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분열을 만드는 일”이라는 원두 스님은 사면보다 화합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올해 세납 89세인 원두 스님은 “만장일치가 되어 종단이 화합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고 희망을 밝히면서도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아있지만 사면받지 못한 채 입적한 스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덧붙였다.

1994년 개혁회의로부터 멸빈의 징계를 받은 종원 스님(좌측)과 원두 스님이 2015년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후로도 10년의 시간이 흘러 두 스님의 세수는 벌써 90세를 넘나들고 있다. [법보DB]
1994년 개혁회의로부터 멸빈의 징계를 받은 종원 스님(좌측)과 원두 스님이 2015년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후로도 10년의 시간이 흘러 두 스님의 세수는 벌써 90세를 넘나들고 있다. [법보DB]

원두 스님과 함께 94년 멸빈된 종원 스님의 이야기는 상좌스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세납 아흔 셋의 은사스님은 이제 청력이 약해져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전한 상좌 보각 스님은 “포항 오어사에서도 30~40분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작은 암자에서 지내고 계시다”고 전하며 “바깥 출입은 거의 못 하고 전화 통화도 쉽지 않은 상태”라고 근황을 전했다. 보각 스님은 “수십여 년 은사스님을 모셨지만 욕심이 없고 평생을 출가자의 본분에서 벗어남 없이 살아오신 분”이라며 “1994년 당시 불국사 주지 소임을 맡아서도 모든 기도, 참선에 빠지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보각 스님은 “당시 종원 스님이 왜 멸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멸빈 이후 지금까지도 삭발염의로 사찰에 머물며 한결같이 수행자의 마음과 자세로 살아오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한평생을 출가자로 살아오신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에 멸빈의 굴레를 벗고 수행자의 자리에서 이번 생의 인연을 마무리하시길 바랄 뿐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종원 스님은 이러한 상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근의 멸빈자 사면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것이 보각 스님의 전언이다.

멸빈자 사면의 또 다른 대상자로 언급되는 진경 스님 역시 3개월 간의 입원을 마치고 최근 퇴원했다. 세수 91세인 진경 스님은 현재 계룡산 갑사 인근 암자에 머물고 있다. “그저 마음공부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근황을 전한 진경 스님은 멸빈자 사면 특별법 추진 소식에 대해 “종단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단언했다. 스님은 “불제자의 소명으로 한때 삼보를 수호하는 심부름을 했고 지금은 오직 마음공부에 주력하고 있다”며 “수행과 마음공부가 출가자의 본분이며 이 또한 종단을 위한 일이고 나아가 불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사면받길 원했던 적은 없지만 다른 스님들의 사면이 추진된다면 반가운 일”이며 “이생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말로 짧은 소회를 가름했다.

멸빈자 사면이 가능한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여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사면의 대상자로 언급되는 스님들의 일상은 세간의 관심과는 무관한 듯 무심해 보인다. 그간 수 차례 이어졌던 사면 시도와 거듭된 좌초에 지친 탓일까. 어쩌면 세수 아흔 언저리, 노승의 눈과 귀는 세간의 소식을 떠나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멸빈자 사면 특별법과 종헌개정을 다룰 조계종 중앙종회는 오는 3월 26일 개원한다.

유화석 기자 fossil@beopbo.com

[1769호 / 2025년 3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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