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미얀마 바간의 전경. 사방 40km의 땅에 2700여개의 탑이 산재해 있는 거대한 탑밭이다. “내가 그대의 구루(큰 스승, 참 된 스승)가 되기를 원한다면 구루로서의 나의 인격을 숭앙하지 말지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인격에는 제각기 단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안에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결점에 신경을 쓰는 한 우리는 그들 속에서 빛나는 다양한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 가운데 『구루의 땅』이 있다. 볼리비아 태생으로 스리랑카와 티베트로 건너가 스님이 된 독특한 이력
“온 힘 다해 수행" ‘봉암 결사’ 정신 서울 복판서 재현 삼보선원을 찾은 수행인들이 화두와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12월 26일 오후 1시 30분. ‘침묵(沈默)’이라는 팻말 하나가 선원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깊은 바다 속 한 가운데 침잠해 있는 듯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화두를 부여안고 한바탕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들은 ‘봉암결사’ 정신을 이어가며 오늘도 좌복 위에 앉아 있다. “엄중한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을 온 힘을 다해 수행하여 우리가 바라는 궁극의 목적을 빨리 이룰 수 있기 바란다.” 말(言語)은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진 듯 고요만이 좌복 위에 앉은 10여명을 감싸안고 있었다. 깊은 바다 속 한 가운데 침잠해 있는 듯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그
임종환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이다. 60대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친구인 의사가 잔여수명이 3개월 정도라고 말해 주었다. 잠시 후 환자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온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더니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몰려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옥에 대한 공포로 인해 영적인 위기를 겪은 것이다. 의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자 마지막으로 호스피스에게 의뢰하였다. 병실을 찾아가 보니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무릎을 약간 세운 채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8년 전에 태국 동북부의 우본 라차타니를 방문해 1975년 아찬 차 스님이 아찬 수메도를 위시로 한 서양의 제자들을 위해 설립한 왓 파 나나차에서 필자는 하루 밤을 머문 적이 있었다. 넓은 숲 속에 전기도 없는 쿠티(스님들이 거처하는 작은 오두막)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 예불과 아침 공양에 참석하는 등, 숲 속 수행의 전통을 따르는 왓 파 나나차의 스님들의 생활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태국의 사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과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수행의 전통을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이곳 왓 파 나나차는 이번에 소개하는 아찬 수메도 스님을 초대 주지로 하여 서양인들이 영어로 태국불교 전통을 배울 수 있도록 설립된 곳이다. 태국에서 10년간 수행 올해로 세수 70세가 되는 아찬 수메도
붓다 입멸 후 화장이 이루어진 람바르 스투파. 열반당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람바르 스투파 옆으로는 붓다가 마지막 목욕을 했던 쿠쿠다강이 흐르고 있다. 붓다의 유적을, 그의 생애를 따라 순례하는 6000리 대장정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나온 곳마다 공히 붓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꼈던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이제 이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쿠시나가르의 붓다 유적지 앞에 나는 서 있다. 막상 붓다 성지 순례를 마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서운함이나 아쉬움과는 다른 착잡함, 애틋함, 그리고 일종의 허탈감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심경이라고나 할까. 아무려나, 이제 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열반당(Nirvana Mandir)과 붓다의 다비식이 행해진
플럼빌리지에서 수행이란 따로 없다. 도반과 길을 걷는(사진 왼쪽)중에도 대중과 호숫가를 산책하는 중에도 ‘걷기 수행’을 한다. 2002년 8월 센포라그란데 기차역에서 스님들이 운전하는 밴을 타고 플럼빌리지가 있는 테낙까지 가는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좌우에는 끝도 없이 넓은 해바라기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아이 몸집만큼이나 만개한 노오란 해바라기꽃이 남프랑스의 말간 햇살을 받으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를 아직은 여물지않은 파란빛 열매를 단 포도밭이 메우고 있었다. 석일행(釋一行)을 베트남어로 발음한 이름이 틱낫한, ‘석(釋)’은 석가모니 부처님 집안 사람이라는 뜻이고 ‘일행(一行)’은 ‘한 가지 행, 한결같은 행’이란 뜻의 법명을 가진 틱낫한 스님이 이곳의 수련회는 수련회(retreat)가
“성탄절을 맞아 우리 2000만 불교도는 생명의 평화와 화해가 충만해 지도록 기원합니다. 살아 있는 목숨이 존중되는 세상에서 모든 생명이 환하게 웃을 때 예수님과 부처님 두 성인은 손잡고 웃으실 것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12월 25일 ‘예수님 오신날’을 앞두고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법장 스님은 21일 축하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의 구원과 부처님의 자비로 인류 모두가 부둥켜안으며 함께 춤을 추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종교간 화합의 의미를 강조했다. 다음은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 전문. 예수님 탄생을 우리나라 2천만 불교도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구원과 자비로 장엄하시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세
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정원에 서있는 사라수. 붓다 열반 당시의 ‘사리쌍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춘다의 동산은 생각보다 크다. 보존 상태도 인도의 유적치고는 그런대로 수준급이다. 하긴 뒷동산 같은 곳이니 보존이고 말고 할 것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이곳은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고 있는데, 곳곳에서 왁자지껄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낯선 이국인들의 출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뜀박질 속도는 두 배쯤 그 강도가 세졌다. 말 그대로 동산(童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붓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인으로 알려진, 그래서 아마도 붓다의 유적지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춘다에 대한 고정관념이 활기 가득한 동산을 돌아보면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하기야 붓다의
사랑하는 처자권속 빽빽이 둘러 있고 금은옥백 보배들이 산같이 쌓였어도 죽을 땐 다 버리고 외론 넋만 돌아가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을레라. 날마다 번거로이 세상사에 바쁘고 벼슬이 드높아도 인생 한 번 늙어지면 자금어대 두려찮고 염라왕이 오라시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을레라. - 부설거사 노령산맥 서쪽 끝 변산반도 봉래산 법왕봉 중턱에 자리 잡은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된 수행도량이다. 오늘날 선원이 있는 수많은 사찰 중 차가 다니지 못하는 유일한 도량인 탓에 이 곳을 오르려면 땀이 줄줄 흐르는 노고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호남의 3대 명승지로 손꼽히는 ‘변산반도의 진주’ 월명암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특혜’가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이 내년 10월 개관예정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는 12월 20일 경복궁 보신각 종각터에서 보신각종 이전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곧이어 포장작업을 거친 후 용산 새 박물관의 보신각 종각자리로 이전했다.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진 종으로 처음에는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걸려 사용됐으나 이후 정릉사가 사라지면서 조선 왕실사찰이었던 원각사로 옮겨져 폐사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원래 보신각에 걸려 있던 종이 화재로 망실되자 이 종을 보신각으로 옮겨 성문을 여닫을 때 사용됐다. 해방 이후부터 85년까지 보신각종은 ‘제야의 종' 타종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종에 금이 가고 종소리가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바로 절망과 두려움이다. 먼저 절망의 경우, 말기암 환자 박씨는 어느 날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호스피스 봉사자가 물어 보았다. 그가 한숨을 푸욱 쉬면서 말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죽음은 곧 절망을 뜻하지 않는가.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게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부터 며칠 지나서 그는 죽었다. 박씨처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해 죽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유방암 말기인 여성이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소리쳤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데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정말 죽기 싫다.” 그
'유심사상'의 핵심을 강의하고 있는 청담 스님 | 열반하기 하루 전 이대에서의 마지막 설법 “부처님께 절부터 올려야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생사여탈권은 물론이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통째로 대통령 손안에 있었다. 1960년대 초반, 그 무서운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로 청담스님을 만나뵈러 왔다. 당시 도선사를 가려면 누구든 수유리 종점에서부터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유리 종점에서부터 도선사까지는 등산객이 다니던 소로길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장장 3Km가 넘는 비탈길이었다. 대통령 부인 육여사가 그 멀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도선사에 올라온 것이었다.
가톨릭 수도원 개조 20년 佛心 심어 美대표 명상도량으로 가톨릭 수도원을 개조해 조성한 베레불교연구센터. 국제포교사회 20여명은 베레불교센터를 방문, 수행 현장을 체험했다. 본고는 국제포교사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희 씨가 미국 베레불교센터를 방문한 후 본지에 기고한 글이다. 국제포교사회 회원 20명은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8박 9일간 프로비던스 젠센타를 비롯하여 조계사, 관음사 등 한국사찰을 비롯해 서래사, 서래대학, 티벳하우스 등 미국 불교의 현장을 방문했다. 버스조차 닿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 미국 동부 메사츄세츠 주 베레에는 IMS(Insig ht Meditation Society)라는 미동부 최대의 위파사나 명상회가 자리잡고 있다. 본래 가톨릭 수도원이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 신임 주지 후보로 선출된 성웅 남장사 주지 스님이 12월 14일 오전 11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예전의 주지 스님과 요즈음의 주지 스님은 큰 차이가 있다”고 전제한 뒤 “예전의 주지 스님이 대중 스님들을 잘 받드는 심부름꾼이자 머슴이었다면 요즈음 주지 스님은 제왕적 주지”라고 지적하면서 ‘주지’의 지나친 권력 집중 현상을 꼬집었다. 직지사 신임 주지 성웅 스님은 “직지사 대중의 원융 화합을 이끌어 내고 직지사가 경북 지역의 불교 복지와 수행, 전법을 견인하는 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성웅 스님은 “12월 15일 포항에서 열리는 정장식 포항시장의 퇴진대회에 적극 동참해 지역과 계층, 이
“문화유산해설사에 대한 관리 업무를 문화재청이 직접 챙기겠다”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은 12월 13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유산해설사에 대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안”이라며 “조만간 문화관광부에서 업무를 이관 받아 문화재청이 직접 문화유산해설사를 관리, 교육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 청장은 “문화유산해설사 업무는 사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해왔어야 할 업무이지만 그 동안 문광부에서 관리하다보니 각종 문제점들이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며 “문광부와 협의해 이 문제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청장이 문화유산해설사를 직접 관리하겠다는 뜻을 비춤에 따라 그 동안 종교적 이해가 다른 이교도 문화유산해설사가 사찰에 배치됨에 따라 발생했던 각
쿠시나가르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파바 마을에 위치한 춘다동산터. 붓다는 이곳에서 춘다로부터 멧돼지 고기 공양을 받았다. “아난다야, 내일 아침 여행을 떠나기로 하자.”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예감한 붓다가 나지막한 소리로 아난다에게 말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승의 목소리와 표정이 왠지 보통 때완 다르게 느껴졌기에 아난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여행은 붓다의 용태가 크게 나빠진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어서 마음 한 구석이 영 개운치 않았다. 점점 공양의 양이 줄었고, 어쩌다가 조금이라도 많이 드시는 날에는 어김없이 설사를 했기에 늘 걱정이 앞섰다. 장(臟)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좌선에 들어 있는 스승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더구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이 있다. 첫째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시점, 둘째 사람이 죽어가는 시점. 2003년 태어난 신생아는 48만 여명에 불과 하지만, 낙태당하는 생명은 약 2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므로, 우리는 과연 인간답게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자살사망률은 급격하게 증가해 자살사망률은 세계 최고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이고,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혹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감안해볼 때, 과연 우리가 인간답게 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삶이 인간답지 못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과정과 죽어가는 과정 역시 문제가 많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죽음과 관련해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4가지이다. 첫째 사람의 평등, 누구나 죽는다.
수닷타 장자의 집터. 신심이 매우 뛰어났던 수닷타 장자는 붓다를 위해 쉬라바스티에 기원정사를 설립했다. 기원정사터의 여러 유적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 불자들의 눈에 띄는 것은 『금강경』 설법지로 추정되는 법단(일종의 강단)과 5백 비구들이 둘러앉아 법문을 들었을 그 주변의 승원터이다. 두루 알다시피 『금강경』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고, 대표종단인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해, 이 유적이 한국 불자들에게 주는 감동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유적이 있겠는가마는, 중생심이란 게 어디 그런가. 『금강경』 설법터에 와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다름 아닌 수부티(Subhuti, 수보리)이다. 수부티는 사밧티의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공(空)과 무상(無常)의
성월 원력으로 선원 개원 경허-용성-동산-고암 역대 선지식 용맹정진 20세기 초 9개산문 열어 선찰대본산 자리매김 좌선-방선은 자유로워 역대 조사들이 걸었던 그 길을 납자들은 올해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방선 시간, 선원 동쪽에 있는 대나무 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치는 댓잎 소리에 활연히 마음이 열린 동산혜일 스님은 “서래의 밀지(西來蜜旨)가 안전(眼前)에 명명(明明)했다.”며 오도송을 읊었다. 그리고 그린 것이 몇 해던가 붓 끝이 닿는 곳에 살아 있는 고양이로다. 하루 종일 창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예전처럼 늙은 쥐를 잡는다 ‘선찰대본산’ 범어사 금어선원은 동산혜일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며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했던 유서 깊은 도량이다. 11월 26일.
“쓰레기통의 콩나물, 다시 삶아오너라” 옛날 큰스님들 가운데 근검절약을 실천하지 않은 분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 가운데서도 청담 스님은 유독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분이었다. 청담스님(사진 왼쪽)과 성철 스님의 웃음이 너무도 천진하다. “쓰레기통 콩나물 다시 삶아오라” 스님께서 서울 강북구 삼각산 도선사(道詵寺)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이 무렵 모든 백성들의 삶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되던 형편이었으니, 절집 살림도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청담 스님은 도선사의 모든 수행자들은 아침에는 반드시 죽을 쑤어 먹도록 했다. 그리고 그 죽에도 조건이 따라 붙었다. “자고로 옛 스님들은 아침에 죽을 쑤되 그 죽에는 하늘이 보여야 하고, 방안에서 들여다보면 그 죽에 천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