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왕릉 조성 대신검소한 불교화장 유언 대왕암에서 장사 지내고동해 앞바다에 유골 뿌려 ▲삼한통일의 주역 문무왕이 죽어 장사를 지낸 대왕암. 여기에서 장사지내고 화장 한 뒤 남은 유골은 바다에 산골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문무왕(661~681)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대왕이다. 삼국간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고 병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 수 있던 평화의 시대가 대왕에 의해 열렸다. 대왕은 평소에 지의(智義)법사에게 자주 말했다. “짐은 죽은 뒤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 이에 법사가 물었다.“용이란 축생보(畜生報)가 되는데 어찌 합니까?”왕은 답했다.“나는 세상의
오어사는 ‘내 물고기’ 라는 뜻절의 본래 이름은 항사사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했던 신라 고승 혜공 스님이 주석 원효 스님에게 큰 영향‘여시오어’의 설화 남겨 “너는 똥을 누었지만나는 물고기 누었다” 의미 ▲신라 고승인 혜공 스님이 주석했던 오어사. 절 이름인 오어사는 ‘내 물고기’란 의미로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의 설화가 화두처럼 전해진다. 문화재청 제공 포항의 운제산 동쪽 항사동에는 천 수백 년 오랜 세월 등불을 밝혀오는 절 하나가 있다. 곧 오어사(吾魚寺)다. ‘내 고기’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절이다. 이 절의 본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항하사 모래처럼 많은 출세자가 배출되기를 바라는 뜻을 내포
승려 용천은 향가를 지어혜성 두려움 희망으로 바꾸고 궁에 떨어진 큰 별의 불길함 불 붙인 연 날려 반란군 진압 ▲신라와 당이 백제를 공격하려 했으나 진영 위에 새 한마리가 맴돌자 소정방은 불길한 생각에 머뭇거렸다. 그러나 김유신의 확신에 압도당한 소정방은 백제를 공격했고 부여 정림사 5층탑에 자신의 공적을 새겼다. 사진은 부여 정림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살다보면 바람 불고 비 오는 날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다. 위기가 닥칠 때도 있고, 어려움에 봉착하여 난감할 때도 있다. 닥쳐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며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을까? 진정한 지도자의 능력은 어려움이 닥쳤을
선덕·진덕여왕에 이어천년 신라 마지막 여왕 향가집 ‘삼대목’ 편찬왕위계승 정당성 홍보 ▲신라 마지막 여왕이었던 진성여왕은 숙부인 각간 위홍과 사랑을 했다. 각간 위홍이 죽자 그를 혜성대왕으로 추존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해인사에 원당을 세웠다. 아마도 지금의 해인사 원당암이 각간 위홍의 원당일 가능성이 높다. 진성여왕의 실정으로 나라는 망했으나 원당암만은 1200년 세월을 넘어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은 원당암 전경. 선덕여왕을 이어 또 한사람의 여왕이 등장했는데, 곧 진덕여왕이다. 여왕은 진평왕의 동복아우 국반(國飯)의 딸로 이름은 승만(勝曼)이었다 ‘승만경’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다. 진
54년 왕위 머물던 진평왕의 딸여자 몸으로 왕위 오른 첫 사례 백제·고구려 공격에 위기처하자하늘 뜻 미리 알아 적절히 대처 ▲ 황룡사지 목탑지(위). 분황사 석탑(아래). 모두 선덕여왕이 창건한 사찰들이다. 자장(慈藏)이 당나라 오대산의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감응을 받았을 때다. 문수보살이 말했다. “너희 나라 왕은 천축 찰리종족(刹利種族)의 왕인데, 이미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았으므로 따로 인연이 있어서 동이(東夷) 야만의 종족과는 다르다.” 찰리종 혹은 찰제리종(刹帝利種)은 인도 사성계급 중의 두 번째인 크샤트리아, 즉 무사계급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은 바로
중국에서 귀국 후 부석사 창건화엄대교 전할 복된 터전 마련 의상 스님의 빼어난 전교 활동당나라는 물론 일본에도 영향 ▲676년에 의상 스님이 태백산에 창건한 부석사 전경. 스님은 이곳에서 해동화엄의 시원을 열었다. 해동화엄의 초조(初祖), 부처님의 후신(後身) 등으로 추앙되어 왔고, 또한 성인(聖人)으로 존경되기도 했던 의상법사, 그가 이처럼 존경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이 땅에 화엄대교(華嚴大敎)를 전함으로써, 진리의 빛을 신라 사회에 두루 비춰주었던 은혜 때문이다. 최치원이 ‘전등(傳燈)의 묘업(妙業)’이라고 했던 것도,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의상전교(義湘傳敎)’라는 제목을 설정하고
진정한 자유, 이론으로 규명하고평생 걸쳐 자신의 삶속에서 구현 스님의 수행력 초지보살로 기록원효스님 무애행의 상징적 표현 ▲경주 분황사 원효 스님 진영. 불교는 인생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불교는 따라해야 할 실천적 가르침이다. 그러기에 아는 것보다도 그렇게 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진리는 인식의 내용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따라서 진리는 온 몸으로 획득되고,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道), 그것은 저쪽 어느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체적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아니, 그 길은 걸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차라는 도구를 타고가면 더 빨리 갈 수도 있다. 도리(道理), 도로
화랑을 國仙이라 불렀는데국선의 仙은 미륵불을 의미 화랑은 낭도들의 리더이며동시에 미륵…국왕도 존경 ▲화랑이었던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묘. 신라에 풍류도(風流道)가 설립된 것은 제24대 진흥왕(眞興王, 540~576) 때다. 왕은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반드시 풍월도(風月道), 즉 풍류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서 화랑(花郞)이라고 했는데, 설원랑(薛原郞)을 최초의 화랑으로 삼았다. 한 명의 화랑을 중심으로 많은 낭도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서로 도의(道義)로 연마하고, 함께 가악(歌樂)으로 즐겼으며, 산수(山水)에 노닐며 수행했다. 나라 사람들은 모두 화랑을 받들었다.
불국사 건립한 대성은 전생 보시 공덕으로후생에 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중시에 올라비구니 자혜 스님의 절 불사가 힘에 부치자선도산 성모가 꿈에 나타나 금 10만냥 보시 ▲2005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가들을 돕기 위한 탁발행렬.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 두 명이 세존께 와서 가르침을 청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훈도해 주시고 저희들을 가르쳐주십시오.”고따마 존자는 말씀하셨다.“집이 불탈 때 가져나온 소유물과 타지 않은 것, 그것은 집 주인에게 크게 쓸모가 있듯이, 그와 같이 세상이 늙음과 죽음에 불탈 때, 보시로써 자
지팡이는 보살·고승 분신이며남기고 간 신발은 화신의 증표 혜공설화 속 짚신은 해탈 상징백율사엔 관음보살 자취 남아 ▲짚신 모양 토기. 부산박물관 소장. 삼국시대. 신이나 불보살은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그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다. 그 진신(眞身)은 드러나지 않지만, 가끔 그 화신(化身)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초라한 거사(居士)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파랑새의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신발이나 지팡이를 남겨 그 흔적을 보여준다. 지팡이와 신발은 그 사람의 분신이자 발자취이기에.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4년(158)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
신라 중대 무열왕권의정당성·신성성 강조한대표적인 정치적 성물 신라 중대 조정에는 신비한 피리 하나가 국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신문왕 때 만든 만파식적(萬波息笛)이 그것이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은 물러가고, 질병이 나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개이며, 바람이 자고, 물결은 평온해졌다. 세상의 온갖 거친 파도를 고요히 잠재우는 피리, 그러기에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 삼국유사에 하나의 독립된 항목으로 수록된 만파식적 설화는 이렇다. 신문왕은 즉위 2년(682)에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는데, 문무왕을 위한 것이었다. 감은사는 처음 문무왕이 짓기 시작했지만 마치지 못하고
대안·원효스님 춤추고 노래하며 설법국왕·화랑 노래로 천지귀신도 움직여사뇌가·서동요·도천수대비가 등 전래 ▲악기를 연주하는 신라시대 토우. 가야금을 타는 악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라 사람들은 노래를 즐겨 불렀다. 노래가 유행했다. 젊은 화랑도는 상열가악(相悅歌樂)했다. 화랑도가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있던 당시 신라사회에는 음악으로 업을 삼는 자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역대의 왕들 중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국왕이 노래를 지은 경우도 있다. 원성왕은 신공(身空)사뇌가를 지었고, 흥덕왕은 죽은 앵무새를 위하여 노래를 지었다. 요원랑, 예흔랑, 계원, 숙종랑 등의 화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을 돕고자 하는
사라수·보현수·지식수·관음송 등 불교적으로 승화된 나무 등장 지통은 나무 밑에서 계를 받고 원효 기리는 소나무 관음송으로 불려 ▲800년 수령의 포항 보경사 회화나무. ‘삼국유사’에는 신성한 나무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보양(寶壤)과 배나무, 그리고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는 제목에까지 나무가 강조된 경우다. 이외에도 신단수, 관음송, 지식수, 사라수 등 신성한 나무들이 있었고, 여러 나무들이 이룬 숲이 신성한 장소로 된 경우도 있었다. 문잉림(文仍林) 신유림(神遊林) 천경림(天鏡林) 등이 그렇다. 먼 옛날 태백산 꼭대기에는 신단수(神檀樹)라는 나무가 있었다. 하늘에서 환웅(桓雄)이 처음 이 세상으
계집종 욱면 염불하다가하늘소리 듣고 서방정토 추위 속 산모 구한 스님하늘서 왕사 책봉 명령 ▲ 자장 스님은 이곳 평창 월정사에서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바다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고 ‘오대산월정사사적’에 기록돼 있다. 월정사 제공 신라 사람들은 가끔 천창(天唱)을 들었다고 한다. 천창은 하늘의 외침이고 하늘이 일깨워 주는 소리다. 또한 가끔 천악(天樂)이 들렸다고 한다. 천악은 하늘의 음악이다. 하늘의 소리와 하늘의 음악, 그것은 하늘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눈치 채지 않고는 하늘의 소리를 듣
출가를 권유하는 지혜로운 까치·까마귀 등장탑돌이 하다 호랑이 처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신중탱화 속 우두나찰. ‘삼국유사’에는 흥덕왕과 앵무새, 그리고 김현감호(金現感虎) 등의 항목이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에는 제목에까지 동물이 등장한다. 신라 42대 흥덕왕은 826년 10월에 왕위에 올랐다. 그 무렵 당나라에 갔던 사신이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다. 얼마 안 되어 암컷이 죽자 수컷이 슬프게 울었다. 왕은 앵무새 앞에 거울을 갖다 놓게 했다. 앵무새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짝인 줄 알고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는 슬프게 울다가 죽었다. 이에 왕은 노래를 지었지만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흥덕왕이 즉위한
정법에 의한 통치로 이상국가 구현역사상 인도의 아쇼카왕이 대표적 고구려·백제·신라 불교식 왕호 사용성왕·흥륜사도 전륜성왕서 따온 말 ▲불교사에서 전륜성왕으로 부각된 인물이 아쇼카왕이다. 사진은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의 아쇼카 석주. 불교를 수용한 삼국은 불교의 종교적 신성을 빌려서 국왕의 권위를 더욱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정치이념인 전륜성왕사상을 각각 받아들여 각국의 정치에 적용하고 있었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은 정법(正法)에 의한 통치로 이 세상에 이상국가를 실현한다는 제왕이다. 전륜성왕은 세간적인 존재로 출세간의 붓다와 상대적 위치에 있다. 전륜성왕은 32상(相)을 갖추고, 칠보(七寶)를 지니고 있으며
견당사소식 기다리는 왕에게죽은 신하 혼령 함께 나타나당나라 백제 정벌 계획 알려 ▲무월랑은 잉어를 통해 사랑했던 처녀의 소식을 전해들었고, 경주 선도산 성모 사서는 중국 황제인 아버지에게 소리개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사진은 선도산 마애삼존불. 현대 문명의 여러 발전 중에서도 통신의 발전은 혁명적이라고 하겠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과의 통화는 물론이고 순식간에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발전 아닌가. 옛날 사람들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할 필요는 있었고, 이 때문에 어떻게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신라의 무열왕은 6년(659) 4월에 백제를 공
신령한 돌 이야기 모아독립된 항목으로 기록 사찰의 창건 설화부터법문 듣는 불제자까지 돌은 아무 말이 없다. 밟히고 차여도 말이 없다. 그래도 돌은 굳고 단단하며 변함이 없다. 돌도 의미가 있다. 물론 돌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사람이다. ‘삼국유사’에는 돌과 관련된 여러 설화가 전한다. 돌 이야기를 하나의 독립된 항목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는데,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座石)조의 경우다. 무심한 돌이라도 그 돌에 불상을 새기면, 그 돌은 부처님으로 변한다. 불상이 새겨진 돌은 이미 돌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귀의와 숭배를 받는 부처님인 것이다. 죽령(竹嶺) 동쪽 백 리 가량 되는 상주에 사불산(四佛山)이 있다. 이 산에 진평왕 9년(587)에 갑자기 큰 돌이 하나 나타났는데 사면이 한 길이나 되었다.
가람이 들어 선 자리는동·식물이 예견한 성소 신묘한 예시 강조해사찰에 신성성 부여 ▲낙산사 홍련암은 의상 스님의 꿈에 현신한 관음보살이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난 자리에 정사를 세우라”고 알려 주어 창건되었다. 성스러운 공간은 세속적인 공간과는 구분된다. 가람은 성소(聖所)다. 가람에는 금당이 건립되고 금당에는 불상을 봉안한다. 그리고 금당 앞에는 탑을 세우고 탑 속에는 불사리를 봉안한다. 이 밖에도 가람에는 강당 등 여러 건물을 세운다. 이렇게 건립되는 가람은 주변의 세속적인 공간과는 달리 성스러운 장소가 되는 것이다. 원래는 세속적인 장소였지만 가람이 건립됨으로서 그 장소는 성스러
‘유사’에 등장한 고승들은초인적 도력 갖춘 영웅들 미래에 닥칠 일 예견부터자신의 방 날려 옮기기도 ▲7세기 전반 백제 무왕 때의 지명법사는 신통한 도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고, 이곳에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사진은 미륵사지 전경. 문화재청 제공 출가 수행한 고승에게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도력(道力)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고승들은 미래에 닥쳐올 일을 미리 예견할 수도 있고, 구름을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고, 자신의 방을 날려서 옮기고, 하룻밤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울 수도 있으며, 같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