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과연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곳인지 의심하고 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에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오늘밤 그 해답이 나왔다”라고 버락 후세인 오마하는 그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려고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 모인 수많은 대중에게 외쳤다. 그의 “담대한 희망(Audacious Hope)”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865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실제로 현재까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보이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차별이 존재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1963년 워싱턴에서 열린 흑인집회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언젠가, 나의 어린 네 명의 아이들도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11월 25일은 세계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의 날이다. 이날을 제정한 것은 1981년 남미의 여성단체들이다. 1961년 11월 25일 독재국가였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던 미라벨 세 자매가 살해된 것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였다. 유엔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수많은 여성이 살해되거나 불구가 되고 구타나 성폭행을 당하며 성노예로 팔리거나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뿌리 뽑는 데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중아함경』에 보면 생전에 악행을 하면 죽은 뒤 지옥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11월 28일은 안락사가 허용된 날이다. 2000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네덜란드가 안락사를
우리 속담에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염불을 폄하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염불은 할 일 없을 경우에나 하는 것처럼 보이며, 하다하다 할 일 없으면 염불이나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하면 쓸데없이 남을 흉보거나 험담하는 것보다 염불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할 일없이 구업을 지어서 남을 괴롭히고 자신의 입을 더럽히는 것보다 염불하여 청정업을 닦으라는 것이다. 흔히들 할 일없이 남을 모략할 때 그 사람을 핀찬하여 “노는 입에 염불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으로 말씀하신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부터 이러한 말이 사용되었을까? 필자는 궁금하여 그 근거를 찾아 본 적이 있다. 이 말은 고려 말의 나옹 스님(1320-1376)께서 처음으로
청와대가 조계종 종정 스님을 모시는 일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불자회 회장 강윤구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두 차례에 걸친 해인사 예방에 이어 최근 임삼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종정 스님의 생일을 맞아 축하 난을 들고 찾았다. 불교계와 청와대간의 갈등을 해소해 달라는 뜻이 아닌 불교계 최고 어른에 인사를 드린 것이라 하지만 속뜻이 따로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청와대의 이러한 노력이 가상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뿐이다. 11월1일 대구에서 열린 종교차별금지입법 촉구와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대구·경북 범불교도 결의대회에 이어 15일엔 정법수호 광주전남불교협의회가 창립법회와 함께 출범하며 범불교도 결의대회가 봉행된다. 장로 이명박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종교차별금지법도 국회에서 논
어느덧, 2008년도 저물어 세모가 가까워진 11월이 되었다. 소매 끝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더욱 차갑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록 계절 탓만은 아니다. 천민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파탄’ 쓰나미가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를 덮쳐, 전 인류를 생활고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던 이명박의 선거공약을 믿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준 대한민국도 미국발 ‘금융파탄’ 앞에 속수무책이다. 주식 값은 곤두박질치고 펀드 계좌는 깡통 계좌가 되고, 경기는 꽁꽁 얼어붙어 겨울이 오기도 전에 이미 엄동설한이 되어버렸다. 공장의 기계는 언제 멈추게 될지 모르고, 회사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며, 과연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는지도 불투명한 그런 세상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북한이 이에 응답하여 즉각 핵시설 불능화 조치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기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어두운 핵위협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또 북한을 옥죄던 각종 경제 제재 빗장들이 풀려 그들의 비참한 경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증대했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악의 축이라던가 피그미등 듣기 거북한 언사로 모욕했다.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인물로 보고 그러한 막말을 한 것이다. 왜 자격이 없다고 보았는가? 북한의 인권탄압보다 북한국민이 기아선상에 헤매고 있는 현실을 더 중요시 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 나라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위인은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것이
금융위기가 온 세계를 흔들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에서 시작된 신용경색은 국제금융시장을 붕괴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신흥개발도상국들에게 국가부도(Sovereign Default)의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고 있다. 외환시장이 불안한 우리나라는 위험한 나라로 분류되고 있고, 나라 안에서도 또 다시 IMF사태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상수지 적자, 에너지와 원자재, 식량의 높은 대외의존도, 몇 가지 품목에 의존하는 수출, 심각한 가계부채, 상존하는 부동산 거품 등 우리 경제의 기초(fundamental)는 너무나 취약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무들은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싱싱하던 잎사귀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면서 이별할 준비를 하고, 한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기 위해 군살을 빼고 있다.이 계절이 지나 겨울이 오면 온 대지는 꽁꽁 얼어붙는 영하의 날씨가 된다. 그러나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를 한다. 생명만 부지할 최소한의 것 이외에는 모두 정리한다. 이는 내년 봄에 새로운 삶을 위해서다. 초봄이 되면 길섶의 민들레는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한다. 불과 몇 센티도 되지 않은 연약한 뿌리가 얼어 죽지 않고 잎과 꽃을 피운다.하잘 것 없는 민들레도 추운 겨울을 살아남기 위해 무소유로 돌아가 동면한다.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깨달아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명의 줄을 놓지 않는다. 미물도 끝까지 살아남
불자라면 하나씩 갖고 있을 염주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재료에 따라 그 이름을 모두 달리 하니 보리수염주부터 율무염주, 수정염주, 목환자염주, 산호염주 등 그 종류만도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일반 불자들은 대부분 보리수 열매를 꿰어 만든 염주를 선호하지만 율무염주를 선호하는 분들도 꽤 많다. 아마도 율무염주에 담긴 애틋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 율무씨앗은 자생력이 강해 우리나라 산간 어디에서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길을 걷다 율무열매가 무성한 곳을 지나면 합장을 올렸다. 어느 이름 모를 스님이 생을 다할 때 갖고 있던 율무염주가 땅에 떨어져 다시 싹을 틔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가진 것에 만족하고, 불필요한 것은 취하지 않는’ 철저한 무소유 삶을 살
16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가 소망교회 장로 출신 이명박 대통령 치하에서 흥망성쇠의 기로에 봉착했다.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물론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 관음종 등 한국불교계를 총망라한 27개 종단의 스님들과 신도 등 20만 불교도들이 지난 8월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봉행한 바 있다. 불교계는 이 자리에서 그 동안 자행된 종교차별에 대한 대통령 공개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및 관련자 문책, 정부의 종교차별 금지 입법 조치, 국민화합을 위한 수배해제 등 4가지 요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국불교 사상 최다인파가 모여들어 종교차별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분출했지만 이 ‘규탄법회
안톤 슈낙의 산문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한다. 왜 아이들이 울까?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이리라. 20세기의 어떤 구루는 슬픔이 바닥모를 깊고 아름다운 검은 꽃이라고 했다. 슬픔의 형이상학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어린애들의 울음에 그런 형이상학의 아름다움이 있을까?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애들이 울어댈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교 비하운동은 욕구불만에 쌓인 철없는 애들이 울어대는 것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슬프게 하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죄인이고 오직 예수를 향한 믿음만이 인간이 구원받고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영화가 있다. 새삼 이 영화의 제목이 기억나는 것은 요즈음 우리 국민의 심리상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마도 ‘불안’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경기침체와 양극화의 심화, 고용의 불안정, 집값, 노후대책과 의료민영화, 미국산 쇠고기 등 먹거리 안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에 대한 불안 등등, 국민의 불안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불안은 사회적 갈등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걱정스럽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사치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많은 불안을 국민들에게 떠안기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출범한지 채 200일이 채 안되었다. 이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은 벌
올 여름 방학에는 허응당 보우(虛應堂普雨:1507~1565) 스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더위도 잊고 스님의 문집을 읽고 난해한 시를 해석하였다. 조선중기 숭유배불정책(崇儒排佛政策)으로 스님들이 광신적인 유생들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찰은 그들의 횡포로 피폐되어 갈 때 불교중흥을 발원하였던 스님이다.그는 사원에서 행패를 부리는 유생을 보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억울함을 참고 주먹을 불끈 쥐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수행으로 자신을 연마하였으며, 내면의 세계를 넓혀갔다. 대장경을 열람하고, 유서(儒書)를 보았으며, 주역까지도 섭렵하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인품은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지각 있는 유생들은 그와 시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다. 13살의 어린 명종(明宗)이 등극하자 불심 깊은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면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20만명의 전국 불자가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불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 종교차별 금지 입법, 그 동안 자행된 종교차별 행위 책임자 체벌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8월 28일자 모 보수언론 사설에는 다음과 같은 논평이 게재되었다. “(전략)이 대통령은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공직자들은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국민화합에 저해되는 언동이나 업무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메시지가 나온 바로 그날 한중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기독교방송 어린이합창단이 노래를 하는 바람에 청와대 안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권의 종교차별 행
요즘 광우병문제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의 예민한 관심을 웅변으로 보여준 것 같다. 국민의 생명과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므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하는 국가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는 법이 없을 것이다. 이점을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에 현 정부가 집권초기에 엄청난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은 철저히 보장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으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 다른 말로 우리의 먹거리는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쇠고기를 먹을 것이고 돼지고기를 즐기는 사람은 돼지고기를 선택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일체의 육류를 거부하고 채소류만 먹을 수도 있다
뜨거운 8월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탓도 크지만 짜증스런 나라 안팎의 움직임이 더욱 사람들을 뜨겁게 만든다. 마르땡 뒤 가르의 소설 좬티보가의 사람들좭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8월, 여름의 달이요, 휴가의 달이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려 하는 것인가? 전쟁이냐 혁명이냐 아니면 평화냐?”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프랑스 사회상을 묘사한 이 소설의 한 구절이 지금 우리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광우병 촛불집회에 이어 독도 문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물가인상 등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시민들로 하여금 평화로운 휴가를 보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 와중에 예순 세 번째 광복절을 맞았다. 그런데 광복 63주년이 아니라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나라에서 재가불교운동은 대단히 어려움이 많다. 일반적으로 불자들은 삭발염의하고 스님의 차림새만 하여도 일단 신뢰감을 가지고 맹목적인 귀의를 한다. 불자들은 스님의 수행이나 위의는 가리지 않고 일단 승복을 입고 가사장삼만 수해도 삼보의 하나로 생각하여 귀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보니 재가불자들이나 재가포교사들이 포교당을 운영하거나 신도단체를 인도해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재가불교운동은 유마거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중국에서도 방거사나 백거이, 소동파 등 눈 밝은 거사불자들이 많이 나왔으며, 원(元), 명(明), 청(淸)의 불교계를 이끌어 왔다. 따라서 이들의 행적을 모은 것이 『거사전(居士傳)』이다. 우리나라에도 신라의 부설거사나, 고려의 이자현, 이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기독교공화국인가. 실로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으로 광신적인 기독교도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 말로만 ‘민주공화국’ 일뿐, 기독교 광신공화국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당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망언을 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을 비롯해 그 동안 포항시장, 서울 성북구청장, 목포시장 등 일부 얼빠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국가기관과 예산을 악용, 기독교 선교에 광분한 일이 일어나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부쩍 늘어난 공직자들의 종교편향 행위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어서 전면적인 대응책 수립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종교편향 공직자들의 광신적인 행위만 봐도 그렇다
고위직공무원을 지내다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가 있는 친구가 있다. 지난 달 서울에 올라와 저녁을 같이 했는데 시청 앞 촛불집회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러한 대규모 집회는 누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비단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뿐만이 아니고 대운하, 강부자, 고소영 등 국민의 건강권과 정서를 소홀이 취급한 현 정권의 오만에 대한 국민의 항의는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매일 밤 시골집에서 다른 유형의 촛불집회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로등을 하나 세웠는데 밤이면 무수한 날벌레들이 등 주위에 날아들어 축제를 벌이는 그 광경이 시청 앞 촛불대회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각종 나비, 갈다귀
데자뷰(deja vu)라는 말이 있다. 기시감(旣視感)이라고 옮겨지는 데자뷰는 프랑스어로 ‘이미 본’이라는 뜻인데 지금 마주치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을 말한다. 최근의 촛불집회를 대하는 경찰과 검찰의 태도를 보면 6월 항쟁 이전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루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빼면 20년 전과 똑같다. 끔찍한 국가폭력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1980년대식의 강경진압을 해볼까도 생각해봤다고 발언했을 때 이미 국가폭력은 예정되어 있었다. 촛불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직접 쏘아대고, 소화기 분말을 분사하며, 빈 소화기를 시민들에게 던지는 것은 이미 국가폭력이다.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비폭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