鞭索人牛盡屬空(편삭인우진속공)碧天廖廓信難通(벽천요확신난통)紅爐焰上爭熔雪(홍로염상쟁용설)到此方能合祖宗(도차방능합조종)‘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 모두 공으로 돌아가니 푸른 하늘 아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다네. 붉은 화로 불꽃 위로 눈 녹이듯 이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조종과 합할 수 있겠구나.’ 곽암사원(廓庵師遠)의 ‘십우도송(十牛圖頌)’ 중 ‘인우구망(人牛俱妄)’.차와 동백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강진 백련사(白蓮寺). 어떤 이에겐 다산 정약용과 혜장 선사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사찰 일주문을 지나 걸어 들어가면
十年花下理芳盟(십년화하리방맹)一段風流無限情(일단풍류무한정)惜別枕豆兒女膝(석별침두아여슬)夜深雲雨約三生(야심운우약삼생)‘십 년 동안 꽃 아래서 아름다운 약속 잘 지켰으니 한 가닥 풍류는 무한한 정이로다. 그녀 무릎에 머리 베고 이별을 아쉬워하며 깊은 밤 운우 속 삼생을 기약하네.’ 잇큐 소준(一休宗純, 1394~1481)의 ‘난세시(亂世詩)’.난세시를 아는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석별의 정이 담겨 있다. 이 시는 흥미롭게도 임종을 앞둔 한 선승이 남긴 시이다. 종교적인 감정과 육감적인 사랑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시의 세계를 보여준다.
境了人空鳥亦稀(경료인공조역희)落花寂寂委靑苔(낙화적적위청태)老僧無事對松月(노승무사대송월)卻笑白雲時往來(각소백운시왕래)‘경계 끝나니 사람 없고 새조차도 드문데 지는 꽃 쓸쓸히 푸른 이끼 위로 내리는구나. 노승은 일없이 소나무 달 마주하며 이따금 오고 가는 흰 구름에 문득 웃고 만다.’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의 ‘요암(了庵)’.어느 날의 밤이다. 꽉 찬 흰 달은 둥글고, 하이얀 밝은 달빛이 구름 따라 흐른다. 사람 사는 마을에선 삽살개가 달빛에 드러난 물상을 보며 짖어대고 어느 노인은 달 보며 탁주 한 잔 걸치겠건만, 이
月面吉祥觀世音(월면길상관세음)救難救苦大慈心(구난구고대자심)楊枝甘露隨緣灑(양지감로수연쇄)盡爾精誠致降臨(진이정성치강림)‘달 같은 얼굴 길하고 상서로운 관세음, 어려움과 고통에서 구해주시는 큰 자비심이여. 버들가지 감로수 인연 따라 뿌려 주시니 이 정성 다하오니 강림해주소서.’ 지운영(1852~1935)의 ‘백의관음상찬(白衣觀音像贊)’.1918년, 67세의 지운영은 같은 해 조선문예사 사장으로 재임한 민병석(閔丙奭, 1858~1940)에게 한 장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커다란 분홍 연잎을 딛고 선 백의관음이다. 살짝
生來死去處(생래사거처)畢竟如何是(필경여하시)太虛本寂寥(태허본적요)脚下淸風起(각하청풍기)‘태어나 와서 죽으면 가는 곳 결국은 어느 곳인가? 태허는 본래 고요하니 다리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는구나.’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1520~1604),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還鄕曲)’.‘고승전(高僧傳)’을 읽다보면, 말과 학을 사랑한 동진(東晉)의 승려 지둔(支遁, 314~366)의 일화를 접할 수 있다. 그의 생애가 담긴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그 일화를 함께 다듬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지둔이 강동의 섬산
塵刹都盧在一庵(진찰도노재일암)不離方丈遍詢南(불리방장편순남)善財何用勤劬甚(선재하용근구심)百十城中枉歷參(백십성중왕력참)‘티끌처럼 많은 정토는 모두 한 암자에 있으니 방장을 떠나지 않아도 남방을 두루 순방한다네. 선재동자는 무엇 때문에 고생을 자처하며 많은 성 안을 두루 돌아다녔던가.’ 원감충지(圓鑑冲止, 1226~1292)의 ‘천지일향(天地一香)’.선재동자(善財童子). 그는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경전 속에서만 존재한 인물이다. 인도 복성(福城) 장자의 아들로, 태어날 때 온갖 보물이
木魚纔動起經僧(목어재동기경승)雲巘蒼蒼曉氣澄(운헌창창효기징)日照石林生異色(일조석림생이색)煙橫山阪有餘層(연횡산판유여층)‘목어 소리에 독경하는 승려 일어났는데 산봉우리 구름 창창하니 아직 이른 새벽이라네. 돌무더기에 해 비추니 이상한 빛이 나고 산언덕에 연기 둘러 층계가 또 생겼구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일찍 일어나다(早起)’ 중.고즈넉한 옛 절집. 부드럽게 부는 바람결에 투박한 목어(木魚)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아름 안 되는 기둥 뒤로 한 선승이 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회색빛 가사를 걸치고 드러난
寒山拾得兩頭陀(한산습득양두타)或賦新詩或唱歌(혹부신시혹창가)試問豊干何處去(시문풍간하처거)無言無語笑呵呵(무언무어소가가)‘한산과 습득 두 승려 시 짓거나 노래 부르기도 한다네. 풍간 선사 어디 갔는지 물으니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구나.’ 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370)의 ‘한산습득도찬(寒山拾得圖贊)’.한산과 습득은 지기지우이다. 두 선승의 일화는 당나라 정관(貞觀, 627~649) 연간에 저장성 천태산에 있는 국청사(國淸寺)를 중심으로 전해진다. 한산은 천태산 한암(寒巖)에 머물렀고, 습득은 스승인 풍간 선사와 함께 국청사에서
師資閑向草中行(사자한향초중행)野鴨飛鳴意忽生(야압비명의홀생)鼻孔扭翻成底事(비공뉴번성저사)新羅日午打三更(신라일오타삼경)‘스승과 제자 한가롭게 풀 속을 거닐다가 들오리 날며 우는 소리에 문득 생각이 일어났다네. 코를 비틀면서 되려 이 일이 이루어졌으니 신라에서 정오에 삼경의 종을 친 격이로다.’ 불인지청(佛印智淸) 스님의 ‘게송(偈頌)’.푸드득,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걷던 두 승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무심한 한 쌍의 들오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스님이 스승인 마조(馬祖) 선사
朝來共喫粥(조래공끽죽)粥了洗鉢盂(죽료세발우)且問諸禪客(차문제선객)還曾會也無(환증회야무)‘아침이면 함께 죽을 마시고 먹고 나서는 발우를 씻는다. 다시 묻노라, 여러 선객이여 지금에 이르도록 깨닫지 못했는가?’ 원감충지(園鑑冲止, 1226~1292)의 ‘우연히 써서 여러 선객에게 묻다(偶書問諸禪者)’.“도는 무엇입니까?” 어느 선객이 조주(趙州) 선사에게 물었다. 대뜸 선사가 아침 죽을 먹었는지 물어보니, 선객이 먹었다고 답했다. 선사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럼 발우를 씻게나.”하루의 일상 속에도 불법은 있다. 옛 시에 ‘아침 햇볕
諸惡莫作(제악막작)衆善奉行(중선봉행)自淨其意(자정기의)是諸佛敎(시제불교)‘모든 악은 짓지 말고 많은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맑게 하니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라네.’ ‘법구경(法句經)’ 중 제183번째 게송.진망산(秦望山)이라는 산이 있다. 험한 봉우리와 푸른 산허리의 절경으로 저장성에서 이름난 산이다. 열국을 평정한 진의 시황(始皇)이 천하를 돌며 위무할 때 이 산에 올랐다. 시황이 정상에서 남해를 보았다고 하여 ‘진망산’으로 불렸다. 당시 승상 이사(李斯)가 289자의 글을 새긴 비가 ‘진회계산각석명(秦會稽山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市人自不識(시인자불식)‘미륵이여, 참된 미륵이여 천 백억의 몸으로 나투신다네. 그때그때 세속 사람들에게 보여주건만 세속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구나.’ 계차(契此, ?~917)의 ‘미륵이여, 참된 미륵이여(彌勒眞彌勒)’.미소 지어진다. 한 걸음 다가서서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행복한 웃음이다. 그 웃음에는 천진함이 넘쳐난다. 꾸밈없이 순수한 아이들로 가득한 까닭이다. 한명 한명의 모습은 세속 사람들과 매한가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행복한 삶과 화합, 이린(李麟
古木千章五月涼(고목천장오월량)小樓八尺一爐香(소루팔척일로향)讀殘數紙還抛却(독산수지환포각)瞌睡居然是坐忘(갑수거연시좌망)‘일천 고목은 오월에도 서늘 여덟 자 작은 누각에는 하나의 향로. 읽다 남은 몇 장 다시 던져버리니 앉아서 잠든 이것이 좌망이로구나.’ 이숭인(李崇仁, 1349~1392)의 ‘현성사에서 글을 읽다가(玄聖寺讀書)’.화가 유숙(劉淑, 1827~1873)이 발을 멈췄다. 작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 그리고 담아놓은 먹물을 꺼냈다. 그저 적은 양의 먹만 있으면 충분했다. 다시 앞을 바라봤다. 한 스님이 등을 구부리고 앉아
月磨銀漢轉成圓(월마은한전선원)素面舒光照大千(소면서광조대천)連臂山山空捉影(연비산산공착영)孤輪本不落靑天(고륜본불락청천)‘달이 은하수에 갈려 점점 둥글어지고 흰 얼굴에서 빛을 흩뿌려 대천세계를 비추는구나. 팔 이은 원숭이들 헛되이 달그림자 잡고자 하나 외로운 둥근 달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네.’ ‘석문의범(釋門儀範)’ 중 관음예문(觀音禮文).“큰일이야! 하늘의 달님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어.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어서 꺼내드려야 해!” 대장 원숭이의 외침이 숲의 정적을 깨웠다. 후두둑 후두둑, 얽키고 설킨 나무를 헤치며 주변
本是山中人(본시산중인)愛說山中話(애설산중화)五月賣松風(오월매송풍)人間恐無價(인간공무가)‘본래 산속 사람이라서 산속 이야기 말하길 좋아하네. 오월의 솔바람 팔고 싶으나 사람들 그 값 모를까 걱정이구나.’ ‘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중 ‘게송 네 번째(偈頌其四)’.옛날 깊은 산속의 고승을 찾아간 선객이 깨달음에 관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고승의 하루 일상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꾸고, 세끼 밥을 먹고,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매번 같은 대답에 싫증이 난 선객이 말했다. “깨달음에 대
富貴猶經五鼎飡(부귀유경오정손)貧窮自足一簞食(빈궁자족일단사)等是浮休百歲間(등시부휴백세간)此何爲失彼何得(차하위실피하득)‘부귀하나 오정 음식 되레 가볍고 빈궁하나 대그릇 밥 만족한다네. 백 년간 떠돎은 다를 바 없으니 이것이 어찌 잃음이 되고 저것이 어찌 얻음이 되리오.’ 충지(冲止, 1226~1292)의 ‘우연히 쓰다(偶書)’.‘쇠똥 화로에서 향내 나다(牛糞火爐香)’. 중국 근대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가 지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그가 추억하는 어렸을 적 집안은 늘 가난했다. 양식이 바닥난 빈 아궁이에는 빗물이 고이고
觀心見性徒自勞(관심견성도자로)似蟲撲紙驢年去(사충박지려년거)爲報含元殿上人(위보함원전상인)莫問長安在何處(막문장안재하처)‘마음 보고 본성 깨달음은 다만 스스로 고생만 할 뿐, 종이에 부딪히는 벌레는 나귀의 해에야 나가겠네 그려. 이르노니 함원전 위의 사람이여, 장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말게나.’ 권필(權韠, 1545~1612)의 ‘제하여 천인상인에게 주고, 아울러 동악의 학곡에 부치다(題贈天印上人, 兼柬東嶽鶴谷)’.사찰 바람에 물든 풍경 소리는 어디로 갔던가. 엄숙한 좌선당 뜰의 한바탕 소란이 산사를 흔든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
呼呼呼入妙(호호호입묘)念念念歸眞(념념념귀진)呼念相交處(호념상교처)如來卽現身(여래즉현신)‘부르고 불러 입묘(入妙)를 부르고 외고 외워 귀진(歸眞)을 염송하나니. 호불과 염불이 서로 만나는 곳에 여래께서 곧 몸을 드러내신다네.’ 치익(致益, 1862~1942)의 ‘염불(念佛)’.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가끔 한 승려와 함께 삼거(三車, ‘법화경’ 비유품에서 말하는 우거·녹거·양거)를 이야기하곤 했다. 얼마간 지내면서 보니, 그의 규범은 마치 가을 하늘의 밝은 달빛에서 얻은 듯했고, 마음은 여름날의 푸른 연꽃 빛깔을 닮
龍吟枯木猶生喜(용음고목유생희)髑髏生光識轉幽(촉루생광식전유)磊落一聲空粉碎(뇌락일성공분쇄)月波千里放孤舟(월파천리방고주)‘고목에 용이 우니 외려 기쁘기만 한데 해골에 빛이 나니 알음알이 되레 깊어져만 가네. 벽력같은 소리에 허공은 가루처럼 부서지고 달빛 천 리 물결에 외로운 배 한 척 떠 있다네.’ 인오(印悟, 1548~1623)의 ‘향엄이 대나무를 치다(香嚴擊竹)’.찬 새벽인 듯 짙은 골안개가 암자 주변을 감싼다. 서늘한 기운 느낀 선사가 긴 대나무 있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쓱 쓱, 고요한 자연 중에 일정한 빗자루질 소리가 듣기 좋게
佛在爾心頭(불재이심두)時人向外求(시인향외구)內懷無價寶(내회무가보)不識一生休(불식일생휴)‘부처는 네 마음속에 있는데 지금 사람은 밖에서만 구한다네. 안에다가 값 매길 수 없는 보물 품었건만 알지 못하고 일생을 놀기만 하는구나.’ 일선(一禪, 1533~1608)의 ‘은선암에 머물며 우연히 읊다(留隱仙偶吟).’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화상은 당나라 때의 고승이다. 불가에 출가하기 이전의 행적은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에 한 여관에 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