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하늘은 쨍하니 금이 갈 듯 푸르다. 표충사 가는 길은 엊그제 내린 비로 가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고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 길을 달려 도착한 표충사는 홍제교 건너에서 일주문이 먼저 반긴다.이번 여행길은 겨울 표충사 참배와 더불어 부광맹인불자회 지도법사이신 밀양 시적선원 진허 스님을 뵙는 일정이었다. 평소 혼자 여행이 힘든 장애법우도 동행하게 하였다. 먼저 진허 스님을 뵙고 법우와 표충사를 가는 일정이었지만 장애가 있는 우리를 배려해 밀양역까지 마중을 나오시고 표충사까지 안내를 해주셨다.표충사는 경남 밀양에 자리한 통도사 말
장충동 동국대학교 내에는 정각원과 대각전이 있다. 정각원은 많이 알고 있지만, 이해랑예술극장 2층에 자리한 대각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수능시험이 있던 날, 만추의 동국대 안 정각원과 대각전을 다녀왔다. 만추의 남산과 동국대 교정은 낙엽이 발 밑에서 얕은 바람에도 굴러다녔다. 낙엽 냄새는 차분하다가도 여러 상념의 파동을 일으켰다. 동국대학교 문을 들어서면서 문득 여러 대학에는 불교학생회가 있고 대학생불교연합회, 대한불교청년회 등도 있음이 떠올랐다,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에서 불교학생회 지도법사로 활동하시는 스님께 코로나를 거치
부산행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부산에 접어들어 차창 밖으로 황금빛 아미타대불이 보인다. 부산에 갈 때마다 평지 한가운데 아미타대불이 자리하고 있는 절은 어떤 절인지 궁금했었다. 바로 금정산과 철마산 자락이 연잎처럼 둘러진 홍법사다.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누구나 접근권이 좋다. 2009년 봄에 조성한 전통과 현대적인 건축문화가 잘 어우러진 원형법당은 부처님의 법이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일체중생에게 두루 평등하게 비침으로 차별 없는 진리의 세상, 즉 정토를 나타내는 법당이다. 원형법당 맨 위에는 기차 안에서 보였던 대아미타대불이 자리
10월 한 달 종로의 조계사는 국화천지, 공룡천지였다. 조계사 경내에 부처님 탄생과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국화로 장식한 조형물이 조성됐다. 불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국화의 정취를 느끼며 가을을 즐기게 했다. 그리고 사방천지에 국화 향기를 폴폴 날리며 날아오르고 뛰어다닐 것 같은 국화공룡을 본 지인들이 왜 갑자기 조계사가 중생대로 돌아갔느냐, 언제부터 공룡이 출몰했느냐면서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었다. 경내를 오가는 사람들 곁을 스쳐 가다 꽃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화꽃 속을 거닐며 부처님의 삶
잔뜩 흐린 일요일 아침에 돈암동 흥천사로 향했다. 수년간 큰 불사를 해온 흥천사는 문화재 복원 불사 등 앞으로도 긴 불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다. 역사와 자연, 사람이 함께하는 전법 도량으로 내일의 미래가 기대되는 절, 꿈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의 큰 원력이 담긴 것이리라.흥천사는 태조 이성계가 왕비인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조선 왕실의 원찰이었다. 정릉 동쪽에 세워졌던 큰 절이었지만 두 차례 불이 나서 폐허가 되었다가 현종 때 흥천사와 같은 뜻의 신흥사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후 정조 18년에 현재 자리로 옮겨
가을의 초입에서 안동 봉정사를 다녀왔다. 안동 대원사 주지 도륜 스님께 보리수아래 수계법회 전계사로 청하고자 갔던 길에 들린 것이다. 조계종 장애인전법단장을 맡고 계신 스님과 점점 좋아지고 있는 사찰의 장애인 환경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 후, 대원사에서 나와 봉정사로 향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시간이 어중간해 택시를 탔다. 억센 안동 사투리를 쓰시는 운전기사는 봉정사에서 나오는 길에 버스 시간이며 만약 택시를 탈 경우 기차역까지 어느 길로 가면 거리가 빠르고 요금이 적게 나오는 것까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봉정사에 도착해서도 직접 매표
인연이 어떻게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소중한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두 분의 인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일흔여덟 사진사의 생애 첫 전시회를 도와드리는 중이다. 보리수아래 행사 때마다 자발적으로 와서 사진을 찍어주는 자원봉사자이다. 행사 때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포교사님이 행사 전체를 기록해주고, 장애불자 개인에 초점을 맞춰 자료를 남겨주신다.일흔여덟 사진사는 수년 전 중풍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왼손에 카메라를 들고 기대서거나, 전동휠체어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한 손으로 카메라를 다루기 위해 같은 동작을 수천번 반복하는 노력을 했다
가을장마가 진다하더니 비가 온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선다. 봉은사 경내의 풀숲에서 풀벌레가 울고 아직 지지 않은 연꽃잎에도 젖은 가을빛이 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지 간에 계절은 제 할 일을 해야겠다고 뚜벅뚜벅 순환의 걸음을 걷고 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만 얽히고설킨 세상살이에서 그리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예상보다 절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백중기도 회향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분주하다. 전각마다 걸음을 멈춰 문밖에 서서 반 배로 삼배를 드리며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굳게 닫힌 판전 문 앞에는 비둘기 한 마리
하늘에 열돔이 쳐진 듯 날은 덥고 코로나19는 방역 4단계에도 꺾이지 않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창밖에서 매미도 대단한 여름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를 나섰다. 박물관에서는 방역의 일환으로 관람객 제한 사전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어 미리 예약을 해두었지만, 무더위 속에 나서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다.회기역에서 이촌역 방향 경의·중앙선 전철을 기다리는데 젊은 여자 한 명이 나에게 동묘앞역을 가려면 무엇을 타야 하는지 물어 건너편 승차장에서 인천과 수원행 1호선을 타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어눌한 내 말에 믿음이
사람들은 절하면 산사를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어디에 있든 지하철역과 연결된 곳이 많다. 그리 연결된 절은 도심 속 산사같이 존재한다. 장애인을 늘 만나다 보니 그들이 사는 지역사회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절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답사를 하곤 한다. 구석구석 다니다보면 지하철역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있는 절이 참 많다. 이럴때마다 절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일상 속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좋은 예가 지하철 6호선 주변에 있는 절이다. 안암역에 개운사와 보타사 그리고 대원암이 있고, 보문역에 보문사,
훈이 어머님 안녕하신지요? 뵌 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개화사에 핀 능소화를 보면서 문득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훈이도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퇴직하기 전까지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에서 가까웠던 개화사엘 산책 삼아 자주 들리곤 했었지요. 어느 해 이맘때쯤이었을까요. 개화사 앞에서 물리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훈이와 어머님을 우연히 만났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에서 자주 뵈었음에도 반색하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물으셨었지요. “우리 아이도 재활치료 잘 받아서 팀장님만큼 잘 걸을 수 있
어느 곳의 절을 가든지 천불을 모신 절이 많다. 고양시 금륜사도 천불이 모셔진 절이다. 그런데 금륜사의 천불은 좀 다르다. 수어(手語)하는 천불만다라다. ‘법구경’을 수어로 전하고 있는 천불만다라는 부처님를 같은 자세와 채색 및 구성으로 똑같이 표현하는 기존의 불화와 달리 1000점의 부처님이 각기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닥종이에 수묵과 채색으로 된 부처님 그림 10점을 한 묶음으로, 한 불화 100개가 모여 총 1000점의 부처 불화로 구성된 천불만다라가 1층에 모셔져 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안성 석남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영화 ‘소울’이 떠올랐다. 영화 ‘소울’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로 주인공인 조 가드너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던 재즈연주회를 앞두고 맨홀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조 가드너가 사후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수 없다”고 도망친 곳은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석남사에 가면 마치 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보고 또 본 ‘소울’과 석남사에서 촬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이 풍등 날리는 장면이 내 머리 속에서 오버랩된 까닭이다. 잠재해 있던 생각들이
누구나 살면서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인연으로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 평생의 벗이 되기도 한다. 5월이 되면 이들이 자연스럽게 더 생각나면서 사는 일이 고맙고 복됨을 느낀다. 영주 부석사 근처에는 복지단체 홍보담당자와 기자로 만난 벗이 산다. 흔치 않은 만남이기도 하다. 현재 기자 생활을 접고 귀향해 살고 있다. 올해 사과 꽃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약속을 잡았다. 사실 번잡한 4월을 보내면서 벗이 보고 싶기도 했다.부석사를 오르는 길은 일주문 보행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양옆 사과밭의 사과꽃은 지고 있었으나 시 한
나무마다 꽃이 피었다. 잔 가지에 연두색 잎들이 자라 신록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거리에서도 제빛을 갖는 나뭇잎이 신선함, 평화로움, 생동감을 안겨준다. 시간과 사회 변화에 발이라도 맞추듯 타지에서 들어온 나무와 꽃들이 토착화돼 아름답게 어울려 피고 진다. 변화는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도 있고 교류가 많아져 자연스레 그리된 것도 있다. 또 환경에 적응하는 근기에 따라 혹은 타자의 의지로 생존과 소멸의 줄을 서기도 한다. 우리는 생존하고 소멸하는 그것들에 대해 지키지 못해 없어진 것에 그리움을 더해 안타까워하고, 새로운 것에는 옳다 그르
100여년 만에 가장 빨리 개화한 벚꽃이 주말을 지나면서 적잖이 떨어졌다. 그래서 마곡사 가는 길도 기대하지 않았다.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길에는 경계를 나누지 않은 넓은 공간이 있어 강요하지 않아 편안하다. 해탈문 옆에 핀 벚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되어 내린다. 꽃비를 맞으며 한참 서있다가 극락에서 세상으로 돌아가듯 다시 해탈문과 천왕문을 통과해 극락교를 건넜다. 해탈문을 지나 희지천을 건넜으니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들어온 것일까? 연등에 둘러싸인 5층 석탑, 석탑 뒤 대광보전, 대광보전 뒤로 올라 대웅보전, 극락교
철이 들면서부터 내 소망은 평범하게 사는 일이었다. 생활이 단순하고 작을지라도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다. 특별나보이는 내 삶을 누구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는 일이기에 보이는 그대로 살고 싶음이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상처를 받는 그 소망을 위로해준 법정 스님의 책들. 책장에서 손에 잡히는 스님의 책 한 권을 들고 길상사에 가는 길에는 무심의 즐거움이 있다.봄비 그친 길상사가 맑았다. 많지 않은 사람들 곁으로 바람만 스칠 뿐 고요했다.봄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영춘화 꽃잎 몇 개가 바람결에 떨어지더니 극락전 풍경소리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춘천 의암호는 봄빛을 가득 담고 출렁인다.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호수의 물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니 정말로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도 오가다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연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 어린 시절 기억 저편에 있는 추억을 안고 글 한 줄 남길 수 있으리라는 바람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고향 어르신이나 친구라도 만나리란 기대도 가져본다.의암호를 한참 돌아 들어가다 보면 내가 자란 고향마을로 가는 초입에 봉덕사가 있다. 절로 들어가는 언덕길에는 노랗게 아름답던 은행나무의 가지마다 새잎을 틔우기 위해 물
통도사 산문에 들어 쭉 뻗은 아름드리 노송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무풍한송길을 걷노라면 푸른 기운이 감돈다. 길 가에 사열하듯 서 있는 소나무 길 위에는 소나무 호위 아래 추위를 견디고 숨은 듯 나지막이 들꽃들도 피어나고 있다. 절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매화가 너무 예쁘다고 하면서 지나갔다. 대여섯 살이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들어가면 활짝 핀 예쁜 꽃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그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과 금강계단도 있고, 보물로
사는 것은 인연의 맺음이다. 좋은 인연이란 나를 앞세우지 않고, 편견이나 집착이 개입되지 않은 인연이라 종종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계산된 나의 분별심이 존재한다. 나를 대하는 상대도 그럴 것이다. 분별심 없이 상대를 인정해 주면 좋은 인연이 되겠으나 곱고 미움, 능력의 유무, 생각이나 지향점이 다른 데서 오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갈등 관계가 되는 경우도 많다.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변할 지 모르지만 올해는 장애 불자들과 사찰 순례를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순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대흥사, 마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