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천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이 3월24일 오전10시 유상범 의원실·동북아평화유지재단 등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규 대사와 800의승군의 명예를 회복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문화재청의 ‘칠백의총’ 유적정비사업은 의승의 공로를 폄훼하는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하며 명칭도 의승군을 포함한 ‘천오백의총’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지원 스님은 “영규대사와 800의승은 1592년 임진왜란 최초 육상전 승리인 청주성 탈환은 물론,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도 순국한 지 430년째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조헌 휘하의 의병 700명 의사만 기리는 ‘칠백의총’만이 전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조헌 선생의 700의병만 선양한 명칭, ‘칠백의총’을, ‘천오백의총’처럼 의승까지 포괄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며 “영규대사와 의승에 대하여 국가적으로 재평가 작업을 해서 의병사를 새로 써야 한다. 스님들의 호국정신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규대사와 800의승에 대한 기념비도 위령재도 없고, 기념식도 제향도 없다”며 “지금이라도 영규대사와 의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스님들의 위패도 모셔야 한다. 가산사에 ‘영규대사·800의승유물관’을 건립할 것”을 주장했다.
정부를 향해 ‘영규대사800의승유물관’ 건립과 ‘승장사’ 복원, 국가 차원 제향, 칠백의총 명칭 변경을 요구한 지원 스님은 “빠른 시일 내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2000만 불자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승병장 영규대사·800의승 명예 회복 촉구 기자회견문
□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에도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승려들은 의연하게 희생의 길을 선택해 민족정신을 지켜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승병장 영규대사입니다. 영규 대사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고제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으로 무예를 익혔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처음으로 승병을 일으켜 800명을 이끌고 최초 육상전 승리인 청주성 탈환과 금산 연공평전투에서 영규대사와 휘하 의승 800여 명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왜군의 호남진입을 막아 곡창지대를 보 호하고, 적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러한 의승의 희생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조헌 휘하의 의병 700명 을 의사 기리는 '칠백의총'만이 전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 영규대사와 함께 금산전투에 순국한 800명의 승군은 순국한 지 4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 습니다. 정부는 조헌 등 700의병만 추모하고 의승은 배제한 반쪽 짜리 선양사업만 하고 있습니다. 선조실록(1592년 9월 11일, 12일 자)과 승정원일기, 쇄미록, 유팽로의 월파집에 나와 있는 의승의 기록을 근거로 지난 20여 년 동안 영규대사와 인연이 있는 금산 보석사와 옥천 가산사, 공주 마곡사와 갑사, 장성 백양사, 중앙승가대 및 관련 단체가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이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였으나, 문화재위원회는 고증자료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입니다.
□ 같은 장소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1500명이 모두 장렬하게 전사 했지만, 800명의 스님들의 시신조차도 거두지도 않았습니다. 임란이 발발한지 4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규대사와 800의승에 대한 기념비도 위령제도 없고, 기념식도, 제향도 없습니다. 조선 백성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쳐 싸우고도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현실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승들의 호국 공적이 국가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 금산 칠백의총에 조선후기까지는 의승을 위한 제향공간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종용사 오른편에 별실(別室)로 승장사(僧將祠)가 존재 했다”는 것을 문화재청이 확인했음에도 정작 칠백의총 종합정비사업(2015~2023, 소요예산 113억 원)에 이를 반영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에서 이를 복원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이 2021년 9월 23일 발간한 ‘칠백의사 그 충절의 기록들;’에도 조헌·고경명 등 21위의 위패를 안치한 종용사 서쪽에 영규대사 와 의승을 위한 사당도 있었고, 그 이름은 승장사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영규대사와 승장사졸 위패가 좌우로 모셔져 있었다는 것은 금산군읍지·이재난고·여지도서·각부청의서존안 등에도 나옵니다.
□ 조정은 봄과 가을 마지막 정일(丁日)에 종용사에서 제향을 올렸습 니다. 이때 제물은 관아에서 마련했고, 승장 영규와 의승에게 고기 제물 대신 두부를 올려 예를 갖췄다고 합니다. ‘각부청의서존안’에선 “종용사의단은 춘추 제향에 60원, 승장 별단에 17원이 필요하다”는 청원서 기록이 있는데, 이 사료를 통해 의승을 위한 제향이 대한제 국 광무2년(1898) 7월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40년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조선총독부 식민지 정책 강화로 칠백의총이 훼손됐습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2차 성역화사업으로 1970~1976년 칠백의총을 복원·정비했지만, 이때도 조헌 선생 선양이 강화된 것과 달리 영규대사와 의승의 공적은 아예 누락됐습니다. 학계·지역사회·불교계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조헌의 700의사와 영규대사와 의승의 역사도 복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음에도 부끄럽게도 문화재청은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 영규대사가 의승 800명을 모집하여 훈련시킨 가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영규대사와 의승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사를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을 올리게 하였지만,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는 그간 전해오던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고, 불온사찰이라 지목하여 가산사를 탄압하였습니다.
□ 호국 선열에 800의승의 역사는 없습니다. 스님을 천대했던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영규대사와 800명의 의승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으며, 오늘날까지 의승의 공적은 거의 묻혀 있습 니다. 매년 9월 23일(1592년 음력 8월18일) 거행하는 순의제향(殉義 祭享)에 800의승은 포함하지 않고, 조헌 등 700의병만 추모하고 있습니다.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흔적은 송두리째 사라져 찾을 수 없습니다. 의승의 외면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승군의 공로를 폄훼하는 것입니다.
□ 지금이라도 영규대사와 의승에 대하여 국가적으로 재평가 작업을 해서 의병사를 새로 써야 합니다. 800의승의 명예를 회복하고,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14명의 스님 위패를 모셔야 합니다. 영규대사를 비롯한 의승들의 위민호국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영규대사와 의승을 위한 사당, 승장사를 복원하고, 순국충혼 위령탑 ‘팔백의승탑’ 건립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 금산전투에 참여해 순절한 의병승장
△종사관 신문스님 △의병장 판관 공연스님 △종사관 운우스님 △의병장 도신스님 △의병장 홍선스님 △의병장 각해스님 △의병장 홍월스님 △의병장 인진스님 △의병장 지한스님 △의병 장 운담스님 △의병장 지원스님 △군관 최호 스님 △뇌묵당 처영스님 △고봉당 운일스님 등
□ 그리고 '칠백의총'의 명칭도 의승을 포함하는 명칭(천오백의승총)으로 바꿔야합니다. 조선을 지나 현대에 이른 지금도 ‘칠백의총’이라 하 는 것은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려 목탁 대신 칼을 들고 참전해 목숨을 잃은 승군의 공로를 폄훼하는 것이자 시대를 역행하는 자가 당착적 역사 왜곡입니다. 충남 ‘홍성 홍주의사총’과 ‘남원 만인의총’, 창원시의 ‘세스페데스공원’을 조성하여 선양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칠백의총’ 명칭을 고집하는 건 불교계를 우롱, 기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이제, 지난 430년의 차별을 끊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이럴 수는 없습니다. 문화재청은 행정 편의주의로 의승 공적을 외 면해서는 안 됩니다. ‘유적종합정비사업’이 올해 8월에 마무리 되 더라도 800의승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사업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영규대사와 800의승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순국선열이며 호국불교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 이에, 우리는 2000만 불자의 염원을 담아 현 정부에 시정을 촉구 합니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호국정신 함양과 의승의 명 예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윤석열 대통령님과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문화재청장에게 촉구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총독부 식민지 정책 강화로 훼손된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역사를 바로 잡아 주십시오.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명예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해 주십시오.
- 우리의 요구 사항 -
하나, 영규 대사가 중건하여 승군을 훈련시킨 호국사찰 가산사에 의승의 위민호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영규대사·800의승유물관'을 건립 하라!
하나, 대한제국 광무2년(1898)까지 존속했으나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 강화로 훼손된 의승을 위한 사당, 승장사를 복원하여 국가 차원의 제향을 올려라!
하나,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명예를 회복하고 '칠백의총' 명칭을 '천오 백의승총'으로 변경하라!
우리의 요구 사항에 정부가 적극 나서 주시길 강력히 요청 드립니다. 만약, 빠른 시일 내 우리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2000만 불자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을 다 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3.23
대한불교 조계종 1300년 호국사찰 가산사 주지 한지원, 승군단장, 승군총 사, 전북승병장, 동북아평화유지재단 등 영규대사와 800의승 명예 회복을 바라는 국민 일동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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