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연재한 지 1년이 지나, 이제 붓을 놓을 때가 되었다. 2014년은 글을 쓰는 필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불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시간이었다. 글을 실어주신 ‘법보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달마야 놀자’서 등장한 조폭은수많은 영화에서 다뤘던 이야기소재로 활용된 주먹 세계 폭력사회·정치 문맥 간과돼 아쉬워영화처럼 컬러풀한 인생에서외려 무채색이 더 빛나 보여“일반 영화를 불자의 관점에서 읽어 달라….” 거의 매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말하자
‘리틀 부다’는 1993년에 개봉된 영화이니 참 오래 전 영화다. 하지만 언제 봐도 느낌이 새롭다. 이 새로운 느낌에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심미안과 철학적 깊이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청나라 광서제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다가 만주국 꼭두각시 황제가 된 ‘마지막 황제(1987)’와 지중해에 자리 잡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탕헤르를 중심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을 기억하는 이들은, 베르톨루치가 동양을 다룬 세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도 ‘리틀 부다’를 흥미롭게 봤을 것이다
2000년에 개봉된 ‘바이센테니얼 맨’은 전형적인 SF 영화다. 장도 보고 요리와 청소도 하고 심지어 주인들과 대화도 하는 가사 로봇을 TV 사듯이 구입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그러나 15년이 흐른 2014년, 우리에게 여느 SF 영화와는 참 다른 영화로 다가온다.2000년에 개봉했던 SF영화가사로봇이 겪는 인간 다뤄누구나 겪는 탄생·결혼·죽음틈에 들어가고픈 로봇 이야기피부·장기·혈액 이식받지만사랑에 빠져 죽음 택한 순간비로소 인간 사이클에 속해우선, 주연을 맡았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얼마 전 이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이
얼마 전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가톨릭신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환영했고 길지 않은 방문기간 동안 보여준 행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 특히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고 한다.정치·역사에 짓눌린 현실 담아히말라야 풍경 속 살풍경 존재영국·중국에 침략당한 티베트영화관 공사 중 나온 지렁이다른 곳에 묻어주고 기도티베트인들 생명관 표현중국 티베트 강제 점령은서양 제국주의 행태와 유사가톨릭이 한국에 들어온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신도수로는 개신교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사실
2013년 개봉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영화 ‘파이의 삶’에 불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들은 모두 나온다. 영화 속에 유독 불교 자리만 없는 것인데, 불자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사실은 화두로 가득 찬 불교 영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나아가 감독이 침묵으로 일관한 채 남겨두었던 그 빈자리가 바로 불교 자리임도 알게 된다. 감독의 불교에 대한 이 고의적인 침묵은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 위의 종교가 불
‘명량’에서 충무공 역을 맡았던 최민식은 이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배우가 되었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일이라도 되어 잠재관객수가 8000만, 9000만이 되는 어느 날 통일을 다룬 감동적인 대작이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1700만이라는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다.뤽 베송 감독의 느와르 영화부패한 인간군상 속 주인공들살인청부업 레옹·소녀 마틸다레옹이 늘 챙기며 사랑한 화분‘아글라오네마’에 담긴 메시지총이 상징한 남성성과 결부돼“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뿌리 내리
“밤하늘을 가르는 혜성에 로봇이 착륙한다,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죠. 상상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유럽의 과학자들이 혜성에 착륙시킬 로봇을 탐사선에 실어 우주로 보냈는데, 10년 만에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탐사선의 속도가 시속 5만km가 넘었습니다. 그렇게 10년, 64억km를 날아온 로제타가 오늘(6일) 드디어 혜성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11월11일 혜성 착륙에 성공하면 과학자들은 태양계 형성의 기원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될 전망입니다.”인류의 달 착륙 1년 전 개봉한SF 영화서 던진 진지한 화두‘드넓은 우주서 인간의 의미
2010년 작인 톰 후퍼 감독의 영화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왕의 연설)’는 말더듬이 왕자를 중심으로 영국 왕실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주인공은 현재 88세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인데, 소재나 배경이 일정한 금기가 존재하는 왕실이었기에 제작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제영화제 상 싹쓸이한 수작말 더듬는 영국 조지 6세 얘기입에 구슬 7개 넣고 발음 교정구슬 토한 뒤 언어치료사 만나왕좌 두려움 극복…성공적 연설말 더듬는 증상 고칠 수 있지만구업 쌓는 습관
이 글이 불자들을 만날 때 즈음이면 영화 ‘명량’은 관객 1500만을 불러 모은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작품이 되어있을 것이다. 진정 궁금한 것은, 대체 무엇이 그토록 많은 이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을까, 의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순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민족의 성웅이다. 거북선, 난중일기, 충무공 등은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들이며, 우리 모두는 그의 시까지 줄줄 외우고 있지 않은가. 광화문 네거리에 가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젊잖게 뒤에 앉아 계신 세종대왕을 보호하는 듯이 긴 칼 옆에 차고 우람한 모습으로 서있는 충무공 동상을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영화 전문지인 ‘씨네 21’이 뽑은 2013년 올해의 영화로 뽑힌 영화다. 그래서 수보리도 잔뜩 기대를 갖고 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90분 동안 화면은 서울 사직공원 일대와 남한산성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낯익은 주변 풍경만 늘어놓을 뿐 좀 이상했다. 한 번이 아니라 낯익은 풍경을 여러 번 중첩해서 지루하게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는 일반인들이 영화 하면 떠올리는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액션도 없다. 주제도 없는 것 같고 교훈도 없다. 영화 전문지가 선정한 작품낯익은 풍경·반전·
1982년에 나온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SF 영화의 고전 중 고전으로 안본 사람이 없는 영화다. ICT, BT, CT 등 T자 돌림의 첨단과학과 이를 응용한 산업들이 회자되는 오늘날, 30여년 전인 1982년이면 거의 ‘태고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액정 모니터 대신 커다란 덩치의 CRT 모니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그 이후 제작되는 인조인간을 다룬 SF 영화들의 전범 역할을 하고 있다.수명 4년에 불과한 복제인간더 살기 위해 인간들과 싸움“더 살게
여러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른 장르들과 함께 당당하게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해석해야 할 여러 층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는 영화는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장르들이 섞여 들고 테크놀로지 영향을 거의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자칫 표면에 가려져 있는 여러 깊이들이 제대로 감상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인데, 가령 1990년에 나온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0)’ 이야기할 때 거의 처연하다고
지난 4월 한국에서 아주 좋은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루시 워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 2010)’다. 영화는 지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보잘것없는 사회 극빈층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명한 브라질 출신 예술가인 빅 무니즈(Vik Muniz, 1961~)가 자르딤 그라마초(그라마초 정원)로 불리는 쓰레기 매립장 노동자들과 함께 폐품으로 미술작품을 만들면서, 거의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한 힘도 희망도 없는 가난한 이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은 “내 탓이오”를 연발하면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영화라는 장르가 이제 철학과 종교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무궁무진한 가능성들 중에서도 철학과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영화의 이 가능성은 역으로 보면 오늘날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철학과 종교가 처한 상대적 빈곤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겸손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대
1990년에 개봉된 영화이니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20년을 훌쩍 넘긴 아주 오래 된 영화다.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후로도 영화 채널 등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이 영화가 문뜩 떠올라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왜일까? 왜 이 영화가 세월호 뉴스를 보던 내게 나도 모르게 다시 떠올랐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면서 불자의 눈으로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자.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을 하다가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닐
영화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 1987)’는 헤어지고 만나는 인생사에 대한 한 편의 우화다.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미국 영화이면서도 얼마든지 불교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서구인 자신들도 모르게 영화에 불교가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매력은 이렇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얼마든지 감상이 가능한 영화 자체의 푸근함에 있다.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심지어 전혀 예상치도 못했건만 불교적 관점까지 허락하는 영화 자체의 이 푸근함은 어딘지 뚱뚱한 여자
대중성과 상업성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영화다. 그래서 ‘우선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딱히 반론을 펴기가 어렵다. “영화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보고 나서 남는 것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쓰레기 같은 영화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도 가능하지만, 문화산업과 한류의 핵심 영역이 된 이후 이런 비판이 영화의 대중성과 상업성 앞에서는 종종 설득력을 잃고 만다.이렇게 영화를 대하는 두 태도와 생각을 극단적으로 맞서게 하는 영화 장르들 중 하나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는 알콩달콩한 영화들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포레스트 검프(1994)’는 TV 등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었으니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거의 20년 전인 1995년 여름,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봤다. 논문 심사를 끝낸 후 후배가 빌려준 샹젤리제 거리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잠시 머물 때인데,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날 저녁 커피나 한 잔 할 생각에 나섰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이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필자는 톰 행크스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가 없는 증후군 같은 것을 앓아야만 했다. 톰 행크스가 나
영화 ‘파파로티’, 참으로 오랜만에 흐뭇한 영화 한 편을 봤다. 파리에 있을 때 한 2년 남짓 아르바이트로 음악잡지 ‘객석’의 특파원 노릇을 하며 봤던 오페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조폭 일당의 꼬마 대장이 감히 성악가가 되려고 한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영화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주먹 쓰는 조폭이 성악을 한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인데, 게다가 이 조폭은 아직 나이 20살도 채 안 먹은 고3 학생이다. 요즈음 고등학생들이 무서운 것은 세상이 다 알지만,
요즈음 들어 일본이 부쩍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계속 헛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럴 때 일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한 편 있다.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8)’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죽기 전에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해야 옳다.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도 아들을 낳았을 때도 봐야 하고, 그 아들이 살아갈 세상이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갈 때도 봐야 한다. 세상이 온통 알 수 없는 흑암 같은 수수께끼 같을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