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빛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 속으로 나아갔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10월8일 30km를 행선해 가야산이 품은 두 번째 목적지 법보종찰 해인사 초입의 거창군 가조면에 도착했다.
새벽 5시 갑작스레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리순례를 시작한 후 처음 맞이한 비 소식에 우의를 꺼내 입는 순례단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일어났다. 빗속을 걷는다는 건 불편을 넘어 잠자리와 다음 일정까지도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행선 내내 순례단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고 다행히 빗방울은 이내 잦아들었다. 부처님의 가피였다.


순례단은 거창 위천 둔치를 지나 바래기재 넘어 느리지만 힘찬 원력의 발걸음을 이어갔다. 하늘 가득 드리운 먹구름 덕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정진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난적은 이날 순례의 마지막 고개인 살피재였다. 해발 396m에 불과한 살피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돼 순례단의 얼굴에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흐르게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재는 끝날 줄을 몰랐고, 순례단은 계속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다리를 연신 움직여야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나타나는 법. 30여분의 고행 끝에 살피재 정상에 선 순례단은 잠시 휴식을 통해 숨을 고른 뒤 다시 가야산을 향해 나아갔다. 산속 시골 풍경은 이미 가을이 가득 차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은 고개를 숙이고 듬성듬성 이미 알곡을 걷어내 논들은 가지런히 놓인 볏짚으로 계절의 순환을 일러주고 있었다.


가을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는 순례단에게 법보종찰 해인사까지 남은 거리는 27km. 순례단은 가조패밀리관광호텔에서 바랑을 내리고 8일차 순례를 회향했다.
동참대중 김나현 불자는 “삼보전에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송광사가 재적사찰인 그의 본명은 쭈응 티 펑리로 베트남 호찌민이 고향인 결혼이주여성이다.


김나현 불자는 “지난해 자비순례를 언론을 통해 접한 후 큰 감동을 받았고, 올해 삼보사찰을 걸어서 참배한다고 해 남편과 두 딸의 동의를 얻어 참가를 신청했다”며 “갑작스런 참여로 준비가 부족해 처음 며칠은 고생했지만, 도반들의 도움과 격려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승 삼보에 공양하는 마음으로 걷고 있다.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게 순례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거창=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