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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기념사업회 “칠백의총, 의승 포함하는 명칭으로 바꿔야”

  • 교계
  • 입력 2023.03.17 10:05
  • 수정 2023.03.17 15:27
  • 호수 1673
  • 댓글 0

3월16일, 사단법인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 성명
“금산전투서 의승군 뺀 ‘반쪽짜리 선양’은 역사 왜곡”

올해 8월까지 유적종합정비사업에 들어간 문화재청 칠백의총. 사진은 사적 앞 기념관 전경. [문화재청]
올해 8월까지 유적종합정비사업에 들어간 문화재청 칠백의총. 사진은 사적 앞 기념관 전경. [문화재청]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가 “문화재청은 칠백의총 정비사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사단법인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회장 원경 스님)가 3월17일 성명을 내고 “10년 동안 수억 원의 세금을 들이면서도 반쪽짜리 금산전투 서술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칠백의총 유적종합 정비사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마곡사 주지 원경, 갑사 주지 탄공, 신원사 주지 중하, 동학사 주지 정엽, 관촉사 주지 혜광, 고산사 주지 규봉, 보석사 주지 장곡 스님 등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승병을 일으킨 의승장 영규 대사와 관련 있는 사찰·스님들로 결합된 단체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영규 대사와 800의승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순국선열이며 호국불교의 상징”이라며 “영규대사께서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승들과 함께 청주성 탈환에 뛰어들어 큰 공을 세웠고, 영규대사와 800의승군은 전라 지역을 지키기 위해 조헌 선생이 이끌던 700의병과 함께 금산성 전투에 참여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23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에서 열린 ‘제430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지난해 9월23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에서 열린 ‘제430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그럼에도 조헌의 의병과 달리 의승은 시신수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같은 전장터에서 함께 숨졌지만 조헌 선생의 제자들은 상투 달린 의병의 시신만 거둬 ‘칠백의총’을 조성했고 영규대사와 의승들은 시신 수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일부 유생들이 영규대사와 의승군을 기리고자 무덤 인근에 ‘승장사’를 건립해 조선 후기까지 매년 제향을 올렸지만 이마저 일제강점기 항일 유적으로 지목돼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다”고 밝혔다. 또 “일제강점기 이후 금산군민들에 의해 칠백의총이 복원됐고, 1970~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역화 사업으로 다시 한번 정비가 이뤄졌지만 이때 의병장 조헌 선생과 의병들에 대한 선양이 강화된 것과 달리 영규대사와 의승의 공적은 오히려 더 가려지고 방치됐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원형조차 검토하지 않고 진행하는 문화재청 칠백의총 정비사업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왜곡을 가져올까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칠백의총 원형을 검토하기 보단 1970년대 성역화 사업만 보완, 정비하고 있어 오히려 역사왜곡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최근 개관한 ‘칠백의총기념관’도 의병장 조헌을 선양하는 기념관일 뿐 영규대사나 의승군에 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화재청의 이 같은 정비사업은 금산전투 역사의 반쪽만 서술하고 있는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23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에서 열린 ‘제430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의승군이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운 것과 이들의 숭고한 가치는 이미 다양한 세미나와 학자들을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의승군이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운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국조보감’ ‘기재사초’ 등에 분명히 적시돼 있고 이미 다양한 세미나와 학자들을 통해 입증돼 있다. ‘선조실록’(1592년 9월 12일자)은 영규대사와 의승군에 관해 ‘호령이 엄명하고 곧바로 전진할 뿐 퇴각함 없이 한마음으로 싸웠다. 이 군사가 아니었다면 청주의 왜적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하루 전 기사(9월 11일자)에서도 ‘1천 명의 승려들이 돌진하니 모든 군(軍)이 이들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쇄미록’ 저자 오희문(1539~1613)은 ‘공주에 있던 승려 영규가 모집한 800의승을 거느리고 함성을 지르며 돌입하자 제군(諸軍)이 승세를 타고 수급(首級) 15과를 참획(斬獲)했다. 남은 적들은 밤을 틈타 도망쳤다’고 썼다. 눈벌전투에 참전한 유팽로(1554~1592)도 ‘월파집’에서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승 수백 명이 참전하자 고경명이 하늘의 도움이라고 감탄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영규의 의승군에 관해선 최소한의 예우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당시 스님들은 조선시대 오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양민 이하의 혹독한 냉대를 받았다”며 “나라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이자 자발적으로 의승을 규합하고 활약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칠백의총에서 의승군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누락하면서 승병에 관한 최소한의 예우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순국선열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숨지고도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린 의승군 역사가 완전히 매몰되고 있는 이 상황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분들의 역사를 외면한다면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질 때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는가.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순국이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명명된 칠백의총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 영규대사와 800의승을 외면하는 일이 어떻게 정당하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칠백의총 사적지·기념관에 영규대사와 의승군 역사를 조명하는 안내판을 세워 지금이라도 의승군 역사를 바르게 규명하고 정당하게 평가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조헌 선생의 700의병만 선양한 ‘칠백의총’이란 사적 명칭을 의승까지 포괄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화재청이 매년 9월 23일 개최하는 제향행사에 의승군 공적도 함께 기려 대한민국 보훈의 역사를 올바로 계승하고, 차후에 조선 후기까지 존속했던 승장사도 그 위상에 걸맞게 여법이 복원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9월23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에서 열린 ‘제430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지난해 9월23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에서 열린 ‘제430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다음은 성명서 전문.

문화재청은 의승군 역사 외면한 ‘칠백의총 정비사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기허당 영규 대사와 800의승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순국선열이며 호국불교의 상징입니다. 영규대사께서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승들과 함께 청주성 탈환에 뛰어들어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어 영규대사와 800의승군은 전라 지역을 지키기 위해 조헌 선생이 이끌던 700의병과 함께 금산성 전투에 참여해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같은 전장터에서 함께 숨졌지만 조헌 선생의 제자들은 상투 달린 의병의 시신만 거둬 ‘칠백의총’을 조성했고 영규대사와 의승들은 시신 수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유생들이 영규대사와 의승군을 기리고자 무덤 인근에 ‘승장사’를 건립해 조선 후기까지 매년 제향을 올렸지만 이마저 일제강점기 항일 유적으로 지목돼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금산군민들에 의해 칠백의총이 복원됐고, 1970~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역화 사업으로 다시 한번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이때 의병장 조헌 선생과 의병들에 대한 선양이 강화된 것과 달리 영규대사와 의승의 공적은 오히려 더 가려지고 방치됐습니다.

문화재청은 현재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10년 동안 수억 원의 세금을 들여 ‘칠백의총 종합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칠백의총 원형을 검토하기는커녕 1970년대 성역화 사업만 보완, 정비하고 있어 오히려 역사왜곡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개관한 ‘칠백의총기념관’ 역시 의병장 조헌을 선양하는 기념관일 뿐 영규대사나 의승군에 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문화재청의 이 같은 정비사업은 금산전투 역사의 반쪽만 서술하고 있는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승군이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운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국조보감』 『기재사초』 등에 분명히 적시돼 있습니다.

이분들의 숭고한 가치도 이미 다양한 세미나와 학자들을 통해 입증됐습니다. 「선조실록」(1592년 9월 12일자)은 영규대사와 의승군에 관해 ‘호령이 엄명하고 곧바로 전진할 뿐 퇴각함 없이 한마음으로 싸웠습니다. 이 군사가 아니었다면 청주의 왜적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루 전 기사(9월 11일자)에서도 ‘1천 명의 승려들이 돌진하니 모든 군(軍)이 이들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쇄미록』 저자 오희문(1539~1613)은 ‘공주에 있던 승려 영규가 모집한 800의승을 거느리고 함성을 지르며 돌입하자 제군(諸軍)이 승세를 타고 수급(首級) 15과를 참획(斬獲)했다. 남은 적들은 밤을 틈타 도망쳤다’고 썼습니다. 눈벌전투에 참전한 유팽로(1554~1592)도 『월파집』에서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승 수백 명이 참전하자 고경명이 하늘의 도움이라고 감탄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님들은 조선시대 오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양민 이하의 혹독한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라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이자 자발적으로 의승을 규합하고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칠백의총에서 의승군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누락하면서 승병에 관한 최소한의 예우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숨지고도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린 의승군 역사가 완전히 매몰되고 있는 이 상황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분들의 역사를 외면한다면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질 때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습니까.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순국이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명명된 칠백의총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 영규대사와 800의승을 외면하는 일이 어떻게 정당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하는 바입니다.

- 문화재청은 지금이라도 당장 칠백의총 사적지와 칠백의총 기념관에 영규대사와 의승군 역사를 조명하는 안내판을 세워 의승군 역사를 바르게 규명하고 정당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조헌 선생의 700의병만 선양한 ‘칠백의총’이란 사적 명칭을 의승까지 포괄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 합니다.

- 매년 9월 23일 개최하는 제향행사에서 의승군과 그 공적도 함께 기려 대한민국 보훈의 역사를 올바로 계승해야 합니다. 차후에는 조선 후기까지 존속했던 승장사도 그 위상에 걸맞게 여법이 복원해야 합니다.

불기2567(2023)년 3월 16일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

사단법인 영규대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마곡사 주지 원경, 부이사장 갑사 주지 탄공, 이사 신원사 주지 중하, 동학사 주지 정엽, 관촉사 주지 혜광, 고산사 주지 규봉, 보석사 주지 장곡, 박근태, 신현보, 안병권.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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