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승 역사 누락 비판을 받아온 ‘금산 칠백의총’(사적)에 의승장 영규(?~1592) 대사와 800명 의승을 기리는 순의비가 세워진다. 비문의 내용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직접 쓰기로 했다. 의승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외면이 투영된 사적지 명칭도 바로잡는다. 문화재청은 연내 ‘금산 칠백의총’ 명칭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을 착수하겠다고 전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정덕 스님)는 1월 29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올해 첫 회의를 열고, 지난해 추진 경과를 공유했다. 특위는 의승 순의비 건립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이를 촉구하는 공문도 발송키로 했다.
조계종 문화부에 따르면 칠백의총 경내 세워질 의승 순의비는 금산 보석사 입구에 세워진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충청남도 문화재자료)’를 토대로 한다. 비석 뒷면에 각인할 의승 공적은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직접 작성한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의승의 역사를 불교계가 직접 조명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위기 앞에 동체대비 심정으로 칼을 들어야 했던 심정을 올곧게 알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화재청은 또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킨 칠백의총 명칭을 바로잡고자 연구 용역을 실시하고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의승 역사를 바로잡는 데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국가 제향 의식에서도 의승의 지위를 회복하기로 했다. ‘호국 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순의제향(殉義祭享)’에 불교계 의례가 아예 누락돼 있는 점을 이번 기회에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앞서 영규대사특위 위원 종봉 스님은 칠백의총관리소장과 만나 문화재청 주관 순의제향 행사에 불교계 의례를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에 총무원 문화부와 문화재청 간 최종 협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영규대사특위 위원 화평 스님은 “문화재청과 논의가 이뤄지곤 있지만 구두로만 협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 조계종 중앙종회의 명의로 2월 중 △영규대사 순의비 건립 △금산 칠백의총 사적지 명칭 변경 △국가 제향에 의승 지위 회복 △칠백의총 경내 의승 관련 안내판 추가 등을 제안하는 공문을 문화재청에 발송하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항일유적으로 폭파되기 전까지 칠백의총 종용사 오른편 별실로 존재했다는 의승 추모공간 ‘승장사’(僧將祠)의 복원 문제를 비롯해 영규대사 묘와 기념비 주변의 정비 등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 회의로 의승 역사를 바로잡는 데엔 첫 발을 내딛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특히 의승 역사 누락 문제가 빠르게 개선된 데에는 영규대사 특위 스님들이 직접 현장 답사하며 역사 재조명에 나섰고 국회의원 정각회(회장 주호영)가 ‘칠백의총’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총무원 문화부와 문화재청의 실무 협의 추진에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또 의승 공적의 재조명이 필요성에 이견 없었고 불교계 안팎으로 공감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영규대사 특위 간사 호암 스님은 "금산군수도, 칠백의총관리소장도 불교계 참여를 호의적으로 본다"며 "칠백의총 시설에 투자한 것과 대비해 참배객이 적어 고민이 있더라. 불교계와의 역사 공유로 칠백의총이 호국 순례 코스가 될 수도 있고 순례인원이 늘어나면 국가와 지자체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누락된 의승 역사를 바로잡는 일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상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암 스님의 사회로 진행한 이날 위원회에는 위원 화평·종봉·성원·지인 스님이 참석했다. 또 중앙종회 사무처장 설도, 문화부장 혜공 스님과 공승관 문화부 차장, 유대호 문화재 팀장이 함께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